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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5. 2021

D-4 | 성격파탄자가 된 어느 MZ세대


한 사람이 2년 사이에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열두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동네 다이소에 갔는데 무인 계산기가 있었다. 구입하려는 상품을 알아서 바코드 또는 QR코드를 찍은 후 계산하면 된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 처음 해보는 새로운 것을 남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게 싫다. 그래도 처음 한 번만 꾹 참으면 되니까, 그다음부터는 계산해주는 직원분과 마주할 일 없이 혼자서 계산하고 나가면 되는 거니까, 더 편해지는 거니까, 라는 생각으로 무인 계산기 앞에 섰다. 사려는 물건이 많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화면을 보니 물건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라고 한다. 나는 당황했다. 물건을 이리저리 돌려 봐도 QR코드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뭐지? QR코드가 없는 건 그냥 바코드를 찍는 건가? 나는 옆에 있는 바코드기를 집어 들어 물건의 바코드에 찍는다. 그러나 되지 않는다. 뭐지? 그때 다이소 직원분이 다가온다. 그거 말고 QR코드로 찍으셔야 돼요. 바코드로 하는 거 아니라고요. 직원은 다짜고짜 내 뒤통수에 대고 쏘아붙이고는 가버린다. 나는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냥 혼자서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두리번거린 적도 없다. 조용히 사용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와서는 화를 내고 가는 걸까.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와서 성질을 부리고 가는 걸까. 내가 뭘 어쨌다고.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좋다.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좋다. 그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피부도 긴 머리도 좋다. 그러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게 여자가 아니라면, 꼭 남자여야 한다면, 키가 크고 덩치도 커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딱 봐도 성질이 더러워 보여서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성격은 이미 더럽다. 외모만 따라오면 된다.



나는 화가 난다.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만지고 찌르고 함부로 눈을 맞추고 말을 건다. 그 모든 건 나에게 폭력이다. 뭐 그런 걸 가지고 폭력이래,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반대로 나도 정말 그런 거 싫어하는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 중 굳이 맨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와서 내 어깨를 쿡 찌르며 말을 거는 것도 화가 나고, 지하철 탈 때 앞사람이 들어가는 속도에 맞춰 나도 따라 들어가고 있는데 빨리 가라며 뒤에서 내 엉덩이를 손으로 미는 것도 화가 나니까.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저… 혹시… 죄송한데요…, 라고 말한 적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례하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면 무시하고 그냥 간다. 인상이 좋아 보이신다며 말을 걸어서 내 돈을 뜯어내려는 사이비 종교여도 싫고, 초행이라 길을 몰라서 물어보는 것도 싫다. 왜 그렇게 인성이 파탄 났냐고 묻는다면 어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고 싶다. 지금이 엉망인 건 이전 세대들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나. 이것도 그런 거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나를 함부로 다룬 이전 사람들의 잘못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이 글을 절대 읽지 않겠지만. 생각해보니 야간자율학습 하고 있는 애들 앞에서 야간자율학습 도망간 놈들 욕하며 화내는 담임 선생님 같은 짓을 하고 있다. 남아있는 애들이 무슨 잘못이라고 욕을 먹어야 하나. 하는 짓이 똑같은 걸 보니 나도 이전 세대다. 모든 게 엉망이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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