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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옥 Jul 10. 2023

간절한 기다림 & 그리움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이제 웬만한 곳은 다 다닌 것 같으니 집 가까운 곳을 가기로 하고 '외돌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곳은 몇 년 전 겨울에 아이들과 잠깐 들렀다 간 기억이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지나갔었던 곳이다.


외돌개는 오래전 화산활동으로 솟아 나와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한다.


내가 바라본 외돌개는 돌 위에 자라는 소나무가 마치 사람의 머리칼처럼 보이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전설에 따른 것처럼 고기 잡으러 나간 하르방을 기다리던 할 망의 모습처럼.

어디를 바라보는지 간절함이 느껴지는 외돌개 모습

계절이 바뀌고 와서 그런지 모든 게 다 새롭고 보이는 풍경도 예쁘다. 잘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넓적한 검은 돌들이 의자처럼 펼쳐져있는 해안절벽을 만난다. 햇살에 반짝이는 쪽빛 바다와 수평선에 닿아 있어 가늠이 어려운 파란 하늘과 하얀 양떼구름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멀리 문섬이 보이고, 새연교도 보인다. 그리고 바닷물로 둘러싸인 조그만 바위에 서서 낚시하는 사람도 있고, 저 너머 지난번 걸었던 강정마을과 해군기지까지도 어슴프레 보인다.


옆에 있는 '황우지 선녀탕'은 가파른 85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데 바다 쪽으로 커다란 바위가 파도를 막아주고 자연스럽게 낮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풀장이 짙은 초록색을 띠는 바닷물로 가득하다. 여름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노천에서 수영을 즐기고 가끔은 지금도 물로 들어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황우지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계단

다시 조금 더 걷다 보면 맞은편으로 바위절벽 아래 황우지해변 동굴이 있다. 동굴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파놓은 해안 진지였다고 하는데 해안선을 따라 파놓은 동굴은 미군의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어뢰정을 숨기는 곳이었다고 한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동굴은 멀리서 보니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이나 폭이 3m 이상이고 깊이도 10m~30m 나 된다고 한다. 아름다운 서귀포해변에서 일제 강점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잊혀가는, 그러나 오래되지 않은 상흔을 기억하게 한다.

절벽 아래 황우지해변의 12 동굴

산책로를 나와 버스를 타고 근처에 있는 천지연 폭포에 갔다. 평지로 들어가는 입구도 재미있게 돌하르방에 환영하는 글귀를 써놓아 반가웠고, 코로나 기간이라 마스크 쓰고 물항아리를 멘 정겨운 할 망 돌도 있다.


천지연 폭포는 중문의 천제연 2 폭포와 비슷한데 더 넓고, 폭포로 가는 길은 울창한 나무그늘을 따라 평평한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 무릎이 약하신 분들도 가기에 편하다. 근처에 있는 돌에 앉아 있으면 폭포의 물이 떨어지면서 퍼지는 안개 같은 포말이 신비롭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무엇을 보아도 아름다운 걸까. 맑고 파란 하늘 아래 하얗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오래된 체증까지도 없애주는 듯 가슴이 시원했다. 이왕이면 점심을 먹고 근처의 정방폭포도 가기 위해 천지연을 나와 '작가의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이중섭거리 부근까지 왔다.


'안거리 밖거리'에서 밥을 먹을까 찾아가다 고기국숫집을 발견하고 오랜만에 남편은 고기국수를, 나는 비빔고기국수를 시켰다. 고기국수는 국물도 맛있고 고기도  쫄깃하다고 남편이 매우 흡족해했다. 내가 먹은 비빔국수는 평이했다.


이어진 작가의 산책길 코스가 칠십리공원을 지나 정방폭포 까지도 연결되어 있어 천천히 공원 표시를 따라 걸으니 화가 이중섭의 동으로 된 설치작품이 있다.


가운데 동판(은박지)에 철필로 아이들이 엉겨서 물고기와 노는 모습을 그리는 두 손이  푸른 바다와 근처 섬들을 배경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거주지에서 이어지는 '작가의 산책길'이다 보니 이중섭의 작품이 빠질 수 없었나 보다.


바다를 배경으로 재미있는 촬영포인트도 여러 곳에 있어 천천히 걸으며 추억을 쌓아도 좋은 곳이다. 계속 걸어가니 맞은편 절벽아래 정방폭포가 보인다. 나무가 우거진 산길에서 바라보는 정방폭포의 모습도 일품이다. 그래도 35년 전 신혼여행 때 이곳을 찾아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곳이라 폭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절벽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정방폭포는 물도 많고 힘도 넘쳐 근처에 있어도 물방울로 촉촉해진다. 폭포뿐 아니라 푸른 바다를 가림 없이 바라보며 검은 돌들위에 앉아 흰 거품을 몰고 거칠게 들어오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더하여, 한쪽에 그늘을 치고 해녀 할머니들이  바닷속에서 직접 채취한 전복, 소라, 멍게와 문어 모둠회를 소주 1잔을 곁들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인생의 황혼 녘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모둠회를 먹으며 바라보는 바다의 물빛은 더 짙어진 것 같고, 돌에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흰 거품은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달콤 쌉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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