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웹툰 PD의 하루
<3년 차 웹툰 PD의 하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중. 경찰, 교사, 작가, 은행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직업들은 추가 질문 없이 바로 공감을 해주는 반면, 내 차례에서는 어김없이 듣게 되는 이 질문.
“웹툰 PD는 어떤 일 해요?”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웹툰을 찾고, 작가님께 컨택 메일을 보내요~ 미팅과 계약 후 작품 론칭 준비부터 매주 연재와 완결까지 작가님이 무사 완주할 수 있도록 이 일련의 과정을 함께 뛰는 일을 한답니다.”
말을 독점할까 늘 주요 업무 위주로 간결하게 답하지만, 웹툰 PD라는 직업은 자리만 주어지면 몇 시간이고 말해줄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매력적이다.
작품에 의한 작품을 위한 웹툰 PD의 하루는 이러하다!
- 오전 9시, 오전에는 편집자로 업무 시작!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노트북을 열어 스티커 메모장에 오늘 할 일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
오전과 오후로 나누고 우선순위별로 나열하고 스스로 정한 마감 시간들도 함께 적는다. 오늘의 일정표 작성 완료!
자, 이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메일들이 있나 확인해 볼까?
회사별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적게는 10개부터 많게는 30개의 작품을 한 명의 PD가 담당한다. 그래서 메일함에는 작가님들이 보내온 시놉시스부터 그림 콘티와 채색본까지 여러 단계의 작품 관련한 확인 요청 메일들이 날마다 가득 쌓인다.
당장 오늘 연재가 되어야 하는 작품은 빠르게 회신을 드려야 조금이라도 더 작업 시간을 확보드릴 수 있는 상황. 마음이 바빠질수록 눈은 커지고 타자는 쉼 없는 소리를 내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듀얼 모니터가 아님에도 마감 앞에 바통을 넘겨받은 PD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화면 왼쪽에는 작가님의 메일에 대한 답장 창을 띄우고, 오른쪽에는 맞춤법 검사기 창을 띄어 놓는다. 의심 가는 오탈자와 띄어쓰기 등을 바로바로 확인하고 교정이 필요한 컷을 캡처해 메일창에 붙여 넣기 한다.
텍스트뿐 아니라, 웹툰인 만큼 혹시 색이 누락된 곳은 없는지와 주인공의 옷 무늬부터 액세서리가 누락된 컷은 없는지 더불어 손 모양은 각도나 개수가 맞는지까지!
그간의 경험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나만의 체크 리스트를 바탕으로 매의 눈으로 확인하면 끝!
그렇게 피드백들을 모아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다시 작가님께 바통을 넘겨드린다.
- 오전 10시 30분
매주 1회, PD들은 각자 찾은 새로운 작품과 연재 문의 메일로 인입된 투고 작품의 진행 여부를 놓고 함께 검토하는 회의를 한다.
뿐만 아니라 계약한 작품의 원고를 같이 보며 각기 다른 시선으로 독자에 빙의해 어떤 점이 추가되거나 수정되면 좋을지 나누기도 하고, 담당 작가님들의 작품 관련 문의나 서로에게 공유가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이 시간에 나눈다.
그래서인지 이 주간 회의 때 나눈 의견들로 그간 여러 기획전이 탄생했고, 온오프라인 행사가 기획될 수 있었다.
- 낮 12시
“저는 작가님이랑 완결 미팅이 있어서 점심 따로 먹을게요!”
작가님들과는 계약 전 첫 미팅 때 한 번, 완결 후 마지막 미팅 때 한 번 이렇게 약 2번의 미팅을 진행하곤 한다. 완결 미팅 식당을 찾는 기준은 예약이 되며,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넓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있는 곳이다.
ㅁㅁ 작가님과는 두 번째 작품을 함께 한 사이. 비록 만남의 횟수는 많지 않지만 함께 한 연수와 매주 피드백 연락을 통해 주고받은 커넥팅을 통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간 잘 지냈는지 안부 인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연재 중 고충과 좋았던 순간을 나누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신지를 물으며 마무리되곤 한다. 늘 묻는 질문은 연재하면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다. 아쉬운 점은 개선을 위해, 좋았던 점은 더 좋게 하기 위해 묻는다.
이렇게 습관처럼 던진 질문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내 마음에 꽂혔다.
“ㅇㅇ님이 담당 PD라서 좋았어요! 다음번에도 제 PD님이 되어주세요~ 만약 임신하신다면 복귀하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오후 2시, 오후에는 기획자로 변신해 보자!
웹툰 PD란 어떤 사람인지 물으신다면…?
웹툰 관련된 회의엔 다 참석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답할 수 있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맞는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보인다.
방학 시즌에 맞춰 매일 유입을 유도하려 기획전을 준비하러 모인 이 시간. 기존에 루틴하게 올라가는 매주 연재 형식의 작품과는 달리 매일 유입을 위해 매일 연재되는 작품을 기획하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언제 어떤 컨셉으로 어떤 작가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풀지를 기획을 했고, 오늘 회의를 통해 그 내용을 디자이너와 마케터에게 설명하고, 일정에 맞춰 각 역할들을 분담하려 모였다.
‘오! 재밌겠는데요? 이건 이렇게 더해보면 어떨까요?’라며 회의가 수월하게 진행될 때도 있지만 각자 직군에서 바라보는 이 기획전의 의미와 목표가 있기에, 접근 방식이나 하고자 하는 방향이 나와 다를 때가 있다.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 한정된 시간 가운데 설득하고 조율하고 최선의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늘 어렵다…! 웹툰 PD는 커뮤니케이션을 매일같이 하는 직군으로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려면,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명확한 방향을 지니며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의견의 배경을 살피고 귀 기울이고 내 의견도 피력하며, 서로의 니즈를 취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를 좁혀가 보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답이 보이곤 한다.
‘휴~ 이번 회의도 다행히 무사히 끝났다..!’
의견이 다르면 치열하게 토론하게 되어 힘들면서도, 그 다른 의견들을 서로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닌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치열하게 일하고 다정하게 응원하곤 한다.
서로의 말을 오해 없이 듣기 위해 평소 관계를 잘 쌓아두고 여러 의견들을 터놓는 자리들을 많이 만들기도 하면서.
-오후 3시
웹툰 PD로서 빼놓을 수 없는 업무란?
바로 새로운 작품을 찾는 일!
플랫폼에서는 매월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월별 론칭 계획을 세우는데, 계획된 월별 작품 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새로운 작품들을 찾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좋은 작품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매일 랜선으로 들리는 곳들이지만 오늘도 눈에 불을 켜고 스크롤을 내려본다.
‘어디 좋은 작품 없나?’
(여기서 좋은 작품이란 우리 플랫폼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와 그림체를 가졌고, 그러면서도 같은 장르의 유사 작품들과 비교 시 이 작품만의 개성과 매력이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담당 PD가 될 내가 정말 좋아하고 빠져들고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눈에 띄는 썸네일을 발견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원고를 확인한다.
두근-
‘혹시 내가 찾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려나!!!!’
벌써 PD 생활 3년 차인 지금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운명적인 작품을 찾으면 입을 막고 가슴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무미건조했던 눈빛에는 생기가 돌고 너무나 평안했던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며, 나 여기 있었다며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이 마음 그대로 담아 연애편지를 쓰듯, 작가님께 미팅 요청 메일을 한 자 한 자 적어 보내본다.
이런 작품을 찾는 게 쉽지 않기에 가끔은 루틴해지고 기대감 없이 습관적으로 찾고 기준들을 많이 내려놓기도 하나, 그럼에도 이렇게 설렘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위해 매일 찾았나 싶다.
오늘은 또 어떤 작품이 올라왔으려나~? 다시금 모험을 시작해 본다.
-오후 4시
띠링-
‘PD님, 론칭 일러스트 3종 전달드립니다.’
론칭까지 단 한 달 남은 △△작가님으로부터 온 메일.
작품의 장르와 주내용과 주인공들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 구성과 포즈의 일러스트들을 보내주셨다. 이 중, 메인으로 보여줄 일러스트를 정하고 요일별 목록에 작게 보일 일러스트와 작품 홈 상단에 보일 일러스트를 함께 정한다.
가장 작품의 매력이 잘 드러나서 눌러보고 싶은 일러스트를 메인 일러스트로,
인물들의 표정과 포즈 등이 잘 드러나서 작게 봐도 작품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를 요일별 목록에 배치할 정방형 썸네일로,
가로형으로 크롭했을 때에도 어색함 없는 일러스트를 작품 홈 상단 일러스트로 지정하곤 한다.
위 같은 기준을 토대로 작가님께 각 일러스트별 활용 구좌를 제안드리는 답장을 드린다.
이제 PD가 할 일은 작가님이 OK 한 일러스트 구좌에 맞춘 카피들 작성하기!
크게 보일 메인 일러스트 아래에 한 줄로 소개될 작품 로그라인과,
요일별 목록에 썸네일과 함께 들어갈 한 줄 소개글,
그리고 작품 홈에 소개될 긴 줄거리까지.
각기 다른 결과 내용의 카피들을 작성해 마케터에게 컨펌받고, 디자이너에게 작가님의 일러스트를 각 구좌별 규격에 맞게 최종 정리부터 세팅을 부탁하면 론칭 준비가 완료된다.
-오후 5시
꼬르륵 대던 소리와 감각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가 바로 퇴근이 필요한 때다!
웹툰으로 시작해서 웹툰으로 마무리되는 종일 웹툰으로만 머리 쓰고 말하고 적었던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웹툰 PD, 그만 퇴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