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by 로그모리

연필의 필기감을 사랑하지만,

나는 연필보다 펜을 선호한다.


깔끔하게 지울 수 없는,

선명하게 남는 기록이 좋다.


나의 과정을 그대로 담아주는 기분이라.

만약 틀리면, 다시 쓰면 되니까.


연필이 아쉬운 건,

지우개에 기대어 가벼이 여기고 싶지 않은 마음.


나의 순간들이 후회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매 순간 진심이기를.



학생일 때 나는 수학이 그렇게 좋았다.

내가 상상도 못 하던 사고의 흐름을 알려주는 기분.


동시에 간결하고, 정확한 답을 찾는다.

덜어내고, 집중하는 흐름을 이때 배우지 않았을까.


때문에 한 때,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였다.

그리고 매 번 말했다. 수학은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라고.


나의 생각을 덜어낼 줄도 알고,

목표를 향해 정돈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은

지금은 이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까, 새삼 떠오른다.



나는 이상한 집착이 있다.

꼬이거나, 실수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물론 세이브 포인트는 따로 둔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과정을 겪어가며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된다.


글쎄, 나의 성장은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뒤로할 수 있는 용기와, 끝내 풀어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그래서 나는 펜을 선호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고.


하기로 했으면 그 과정을 그대로 남겨

그마저도 아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여전히 바라고, 행하려 노력한다.

나의 좌우명 처럼.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



시간은 공평하고, 무엇을 새길지는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번복할 수 없다.


한 번 새겨진 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이며 회상할 뿐이다.


때로는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가 이뻐 보이기도 한다.


같은 한 순간이다.

결국,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 이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형태로

나를 그려가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모습은 어떤가.

아쉬움에 잠식되지 아니하고, 나아가고 있는가.



자연스레, 나도 모르게 나오는 표현이 좋다.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리라.


스스로에게 진솔할 수 있다는 건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삶은 되돌릴 수 없는 새겨짐의 연속이다.

아쉬우면 다음은 보다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과정이다.


나의 오늘은

구름을 눈여겨본, 작은 여유를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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