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by 로그모리

빈 수레가 요란하다.


나는 이 속담이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깊이가 얕을수록 안다고 생각하고,

깊을수록 전혀 모르겠다 한다.


앎과 무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깊이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비어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요란하다는 것은 또 무엇을 나타내는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인지에서 시작한다.


인지할 수 있는가?

No - 무지

Yes - 앎의 시작.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인지하여 사유하는 순간이다.


사실 내가 아는 것은 한 부분,

혹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결국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아 그거 알지' 라는 건 불변하는 순간, 특정 부분이다.


설정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의 앎은 무너진다.


동시에 무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을 때,

우리는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저 무지일 때는 필요하지 않다.

그대로 모르거나, 알면 되니까.


인정하는 용기는

앎과 무지의 경계에서 필요하다.


내가 잘 못 알고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부정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라 여길 수도 있다.


경계에서 진정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깊이는 비교적 단순하게 표현한다.

'투쟁의 농도' 이다.


스스로와의 전쟁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단지 고민보다는 투쟁에 가깝고

시간의 양보다는 담겨있는 농도에 가깝다.


흘러가듯 지나가는 순간이 아닌

목숨을 건 전장처럼 매 순간을 임했을 때.


전과는 다른 깊이를 가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육체적인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정신적인 것일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평가의 기준은 없다.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깊이가 생긴 사람의 모습과 말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느낄 수 있다.


치열한 전장을 누벼왔다면, 혹은 지금이라면.

부디 더 진정으로 임하기를, 승리하기를.



비어있다는 것은

앎과 무지도, 깊이의 여부도 아니다.


그의 기준이, 태도가 흔들리는가.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은

대개 위태롭기 마련이다.


만물이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앞서 말했듯 아는 건 나뿐이나, 느끼는 건 모두이다.


모두에는 청자로서, 관찰자로서의 '나' 역시 포함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스스로에게도 불안을 준다.



요란하다는 건

잡음이 많고, 흔들린다는 것.


중심을 잃어버린 것들은

괴상하리만큼 큰 움직임을 보인다.


동시에 무척이나 변칙스럽기에

예상할 수도 없는 위협이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위협적인 것은 피하게 되어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하였으나

요란하다 하여, 비어있지는 않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느낄 수 있다 하였으나

느낄 수 있다 하여 단정 짓기를 권하지 않는다.


위협을 감지하는 우리의 본능 시스템은 믿을만하다.

다만 이를 남이 아닌 나에게 적용하기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지도록,

나의 끝없는 투쟁에 맞서 싸우도록.


나의 어떤 것, 어느 순간에

용기가,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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