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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an 26. 2021

코로나 백신을 앞두고, 탈리도마이드 이야기

대한민국 국민도 코로나 백신을 접종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한다. 국민들 사이에는 백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희망과, 1년 만에 만들어진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내 마음속만 해도 얼른 백신을 맞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백신 접종 후 부작용에 대한 공포감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현대 의학 역사상 최악의 약품 부작용 사건이 있다.  


1950년대 후반, 유럽에서 수 천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공통적으로 팔과 다리가 없거나 짧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절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숫자와 형태가 아니었다. 원인은 독일의 한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이었다.


탈리도마이드는 수면제, 진정제로 개발이 된 약이었다. 어떤 약이든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쥐 같은 동물에 투약해보는 실험을 거치는데, 탈리도마이드는 동물 실험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작용 없는 기적의 약'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집 근처 약국에서 간단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수면제로 시판된 이 약이 입덧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단순한 수면과 진정 작용만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임산부가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하지 않았을 텐데, 입덧에 효과가 있는 바람에 수많은 임산부가 이 약을 복용하고 말았다.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이 기형을 가진 채로 태어났다. 태아에게 치명적이면서, 임산부의 입덧에 효과가 있는 탈리도마이드의 역설적이고 치명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큰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이런 비극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 의약품을 시판하기 전에는 반드시 인체에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약회사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면, 그 실험을 검토하고 약의 타당성을 인정해주는 것은 각 나라의 FDA, 한국 식약처로 대표되는 정부 부처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에는 그러한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제약회사의 전방위적인 로비에 의해 정부가 약품 사용을 승인하곤 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터진 후에야 비로소 세계 각국에서 약품 승인 체계가 정립되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는 비슷한 사건이 터지지 않고 있다.


당시 탈리도마이드는 유럽에서의 인기에 힘 입어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유럽 외의 여러 나라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엄청난 인구를 가진 미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프랜시스 켈시(Frances Kelsy)라는 단 한 명의 FDA 직원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약리학을 가르치던 의사였는데, 1960년에 미국 FDA에 취직하여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승인 심사를 요청한 약품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아주 간단한 일을 맡게 되었는데, 입사 후 처음으로 심사를 맡은 약이 바로 탈리도마이드였다. 그녀는 보고서의 부실한 점을 발견했고, 제약회사의 압박에도 끝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서 1년을 버텼고, 마침내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증명됐다. 그녀는 순식간에 미국의 국민 영웅이 되었고, 수많은 아이들을 지킨 공로로 대통령에게 상을 받았다.


탈리도마이드 이야기에는 참 많은 교훈이 담겨 있다. 의사들에게는 특히나 배울 점이 많은 사건이라, 약이나 임상 시험에 대한 교육이 있을 때마다 언급이 된다. 임산부와 그 가족들에게도 임신 중에는 약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중요한 상식을 알려준다. 여기에 더해 임신 중에도 복용이 가능한 약이 있고, 의사에게 임신 중에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 좋다. 공무원들에게도 꽤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느껴질 것 같다. 말단 공무원 한 명이 나라를 구한 사건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 것도 아니고 그냥 원칙대로 책임감 있게 했을 뿐인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조만간 식약처 공무원들이 한국에 들어올 백신을 심사할 예정이다. 그들 중에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프랜시스 켈시의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이 오로지 과학에 근거하여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올바른 심사를 할 것이라 믿는다. 식약처가 맞아도 된다고 하는 백신이라면,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팔을 내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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