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되고 2주가 조금 안된 3월 중순의 어느 날, 내과 야간 근무는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응급 환자도 없었고, 사소한 걸로 힘들게 하는 환자도 없어서 수월했다. 다만 마음은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며칠 전 내과 1년 차 레지던트들이 걸었던 내과 인턴 전체 집합 때문이었다. 집합 명목은 교육이었다. 교육 분위기는 험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레지던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불만이었다. 나와 인턴들의 1주 차 근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모르면 좀 물어봐가면서 하라는 게 주된 요지였다. 사실 일주일 동안 뭔가를 물어봐서 좋은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었지만, 그마저도 내 잘못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심란했지만 일이 많지 않아 위안을 삼고 있던 중, 새벽 3시에 12층 병동에서 어려운 전화가 왔다. 환자 한 명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단번에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낯선 증상이었다. 식은땀은 흔한 증상이긴 하지만, 보통 다른 확실한 증상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편이기에, 식은땀을 주증상으로 표현하는 환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며칠 전 집합에서 한 레지던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우선 병실로 향했다.
“잘 모르겠으면 직접 환자한테 가서 ‘때깔’을 보세요. 여러분이 잘 몰라도 때깔이 이상한 거는 한눈에 알 수가 있어요. 때깔이 이상하다 싶으면 우리(레지던트)한테 말해줘요.”
병실에서 만난 환자는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할아버지 폐암 환자였다. 옆에는 아내가 보호자로 있었는데, 걱정이 심한 지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했다. 보호자를 겨우 진정시키고 환자를 진찰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고,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이 나거나, 의식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물어보는 말에 잘 대답했으며, 통증이 있는 곳도 없었다. 환자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단 번에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보기에 ‘때깔’이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숨을 잘 쉬나 보는 검사인 ABGA와 가슴 엑스선 검사를 시행하고, 새벽 3시 반쯤 그날 야간 당직인 1년 차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얼마 전 집합도 당했고, 시간도 많이 늦었기에,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심폐소생술보다도 부담스러웠다. 깔끔하게 하고 싶어서 대본을 적었다.
‘60대 폐암 환자 / 식은땀 나며 힘들다고 호소 / ABGA 결과 / 때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거니 자다 깬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자기소개 후 대본대로 이어 나갔다. 레지던트는 ABGA 결과까지 듣더니, 30분 뒤에 다시 ABGA를 해서 결과를 알려 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때깔이 안 좋아 보인다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아마 ABGA 결과가 많이 나쁜 편은 아니어서 그랬을 텐데, 내가 때깔이 안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대답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어쩔 수 없이 멍하니 30분을 대기했다.
새벽 4시, 레지던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지를 않았다. 이후 5분에 한 번 꼴로 전화를 걸었지만, 몇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환자는 그 사이 점점 나빠져 갔다. 식은땀은 더 많아졌고, 호흡은 더 가빠졌으며,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졌고, 의식은 점점 쳐져 갔다.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병실에서 처치실로 옮겨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보호자는 점점 공포감에 사로잡혔으나 해줄 수 있
는 말이 없었다.
나빠지는 환자와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보니, 나라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를 고민했다.
‘인턴에게 허락된 간단한 검사 이외에 좀 더 확실한 검사를 처방해볼까? 아니면 다른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다른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지만, 며칠 전 집합 이후로 생긴 의기소침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게 막고 있었다. 점점 나빠지는 환자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새벽 6시 반, 드디어 그 레지던트가 방금 감은 듯한 젖은 머리로 나타났다. 젖은 머리를 보고 혹시나 했는데, 내가 전화로 말한 환자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 있을 자신의 담당 교수 회진을 준비하러 온 것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왔다는 게 중요했다. 간호사가 그 레지던트를 끌고 처치실로 들어갔고,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레지던트가 환자를 보고 당황하여 진찰하는 순간, 모니터에 표시된 환자의 심박수가 0으로 변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레지던트는 급히 환자의 맥박을 찾더니 중얼거렸다.
“있다…. 있어…. 있죠?” 레지던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환자의 모습은 누가 봐도 심장이 멈춘 사람이었다. 나는 레지던트를 믿지 않고 얼른 맥박을 찾았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쪽에서 맥박을 찾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없어요! 코드블루 띄워!”
나는 즉시 환자 위에 올라타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잠시 후 다른 의사들이 몰려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환자는 끝내 사망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출근하자마자 코드블루를 듣고 달려왔던 고년차 레지던트들이 사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오열하는 보호자, 전화를 받지 않던 그 레지던트, 담당 간호사와 각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즉시 달려가 그 레지던트가 환자를 죽인 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발과 입이 안 떨어졌다. 고고한 레지던트들이 내 말을 듣기나 할까 싶었고, 보호자가 내 말을 듣고 보일 반응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아니어도 병동에서 함께 발을 동동 구르던 간호사들이 잘 설명해 주리라 믿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조용히 퇴근했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게으르고 무능한 레지던트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고,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기력감과 패배감도 엄청났다. 평정을 찾고 잠에 들려고 노력하던 중, 전화기가 울렸다. 내과 치프 레지던트였다.
“선생님, 어제 12층 당직이었죠? 환자 안 좋은데 왜 당직한테 노티(notify: 환자 상태를 보고하는 행위) 안 했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 레지던트가 거짓말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뇨!? 저는 새벽에 노티 다 했는데, 당직 선생님이 첫 통화 후로 계속 연락이 안 됐어요. 수십 번 전화했고 통화 내역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 내 말을 믿어주는 눈치였다.
“알았어요. 그러면 지금 간호기록(담당 간호사가 기록하는 환자의 타임라인)에는 선생님이 잘못한 걸로 되어 있으니까 12층에 전화해서 수정해 달라고 하세요.”
레지던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간호기록만 보고 나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12층 병동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매우 바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지금 기록을 정리 중이고, 있었던 대로 기록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되었다. 분노와 무력감에 찌들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날 잠에서 깬 뒤로, 더 이상 의기소침하지 않기로 했다. 레지던트는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불완전하고 평범한 인간이었고, 괜히 위축되어 압도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레지던트와 인턴의 관계도 재정립했다. 상하 관계가 아니라 동업자였다. 그들과 나는 단지 맡은 역할이 다를 뿐, 동등한 책임과 권리를 가진 의사였다. 인턴으로서 나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레지던트가 시킨 ‘의학적 잡일’이었지만, 필요할 때는 스스로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