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본 입덧은 안 그랬는데요
흔한 K-일일드라마의 한 장면.
재벌 시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여주인공.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날이 야위어 가고 있다. 그런 여주인공이 안쓰러운 엄마는 오랜만에 딸이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어 찾아간다. 하지만 음식 뚜껑을 열자마자 여주인공은 “우욱”하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임신이다. 과연 여주인공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주 이 시간에…)
입덧은 임신을 알리는 장치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매우 흔하게 쓰인다. 너무 뻔한 연출 방식 같지만, 2020년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도 쓰이기도 했다.
입덧은 전체 임신부의 70~85%가 겪는다. 임신 극초기인 5~6주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 9주를 전후로 많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 증상은 11~13주 차에 정점에 달하며 14~16주에 들어서며 잠잠해지나, 20주를 넘기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5주 차에 임신을 알게 된 나는 곧 다가올 입덧이 무서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보다 2주 먼저 임신한 친구는 이미 극심한 입덧으로 본가로 가서 요양 생활 중이었기에, 나에게도 닥쳐올 고통을 기다리며 혹시라도 입덧이 너무 심해져서 회사에 임신 소식을 빨리 알려야 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
누군가는 입덧을 엄청난 숙취가 전혀 나아지질 않고 몇 달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느낌에 비유했다. 평소 술만 좀 마셨다 하면 이튿날 한낮이 될 때까지 변기를 붙잡고 사는 만성 숙취 인간(물 마시면 물 그대로 뱉어내는 숙취)이라 그 고통이 가늠되어 무척이나 두려웠다. 하지만 운이 조금 좋았던 것일까? 나의 입덧은 구토가 아닌 ‘먹덧’과 ‘속쓰림’으로 찾아왔다.
먹덧이라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구토 증상이 입덧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겪은 먹덧을 포함해 흔히 알고 있는 구토 증상을 일으키는 토덧, 양치만 했다 하면 구토는 물론이고 치약 냄새 조차 맡을 수 없어 괴로운 양치덧, 평상시에 맡던 익숙한 모든 냄새가 역겨워지는 냄새덧, 내 침마저 역해서 삼킬 수 없는 침덧 등등. 속을 게워내게 만드는 각종 트리거들이 임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겪은 먹덧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먹어야 낫는 입덧으로, 속이 조금이라도 비면 울렁거림이 심해져 끊임없이 입 안에 음식을 넣어줘야 편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공복덧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일반적인 구토 입덧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물론 먹덧도 입덧인지라 나름의 고충은 있다. 계속 먹어야 한다는 건 정말 ‘쉴 틈 없이’ 먹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야 뒤집어진 속이 가라앉는다.
마이쮸라도 하나 입안에 물고 있어야 울렁거림이 겨우 가라앉는데,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먹어주는 것은 물론, 이른 새벽에 울렁거림을 동반한 속쓰림에 저절로 눈이 떠져 냉장고를 뒤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먹덧은 결국 위장에 무리를 주었고, 태어나서 처음 위경련을 겪으며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부라 위장약은 못쓰고 수액만 맞고 버텼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타이레놀 처방받아서 먹은 게 전부인데, 타이레놀은 정말 임산부들의 한줄기 빛 같은 존재다. 임신, 출산, 수유 기간 동안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약이다.)
그리고 먹덧은 체중 증가를 야기한다. 나는 임신해서 총 18kg 정도 증가했는데, 초기에만 먹덧으로 거의 6~7kg 가까이 늘었다. 그리고 출산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10kg만 자연스럽게 빠지고 8kg은 여전히 남아있다.
참고로 임신 기간 동안 증가하는 몸무게가 모두 살은 아니다. 아기와 양수, 태반의 무게를 포함해 평소보다 훨씬 커진 자궁의 무게, 모유 수유를 위해 커진 가슴, 혈류량이 늘어나서 증가한 무게 등을 모두 합치면 약 9kg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산후조리원에서 감량한 10kg 정도는 출산 후 필연적으로 빠질 무게였던 것. 초기 먹덧 당시 찐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임신 기간 동안 약 2~3kg 정도만 증가한 셈이다. (기적의 계산법)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몸무게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임신하면 살이 찌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미디어에서 그리는 '아름다운 임신부', '날씬한 임신부'에 세뇌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걸 '임산부 코르셋'이라고 부르고 있다. 임신 기간을 포함해 출산 후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건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겐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임산부 코르셋'의 끝판왕은 출산 후 약 7시간 만에 하이힐을 신고 풀세팅한 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이라 생각한다. 나는 출산 후 7시간 정도 지나있을 때 제왕절개 마취가 풀려 침대 위에 소변줄이 꽂힌 채 누워서 울부짖고 있었는데.
사진출처: https://www.demilked.com/kate-middleton-birth-reactions-comparing-funny/
나뿐만 아니라 많은 임신부들이 체중 증가를 비롯해 외적인 부분의 다양한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데, 나는 살찌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몸에 더 해롭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놀랍게도 임신으로 인해 증가했던 무게는 개인차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저절로 빠진다. (물론 나처럼 초기 먹덧으로 인해 찐 살은 노력 해야 빠질 것이다.) 살이 알아서 빠진다니? 지금 체중으로 고민하는 임신부들에겐 이 말이 마치 "대학 가면 살 빠진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정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쾌적한 임신 생활을 위해 적어도 살로는 스트레스 받지 말자.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그건 내 무게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