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날 때’, 이동진
이동진 작가를 정말 좋아하고 존경한다.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부드럽고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매번 감탄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똑똑한 사람 널렸는데 왜 하필 이동진이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그냥 약 10년 전 <영화는 수다다>를 본 순간부터 반해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더 반하게 된 글이 있다. 바로 ‘터널을 지날 때’라는 글이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낭독해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좋았다. 그중 가장 좋았던 구절을 두 개 골라봤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 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이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후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이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과거에 집착과 미움과 후회가 생길 때마다 이 글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참 섬세하고 다정한 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자주 뒤돌아보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게 아닐까. 물론 성찰은 필요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걸 붙잡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제 내 과거의 상처들도 보내줄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낀다. 다음 삶의 단계로 가려면 완전히 벗어난 이후에 표정 없는 얼굴로 뒤돌아봐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내 불행했던 과거를 놔버리고 홀로 서는 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불행과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묘한 우정이 생기는 것 같다. 불행과 나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게 생긴다. 터널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인가 보다. 하지만 더 이상 불행을 잡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한테 미안한 일이므로 떠나보내야 한다. 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문득 이동진 작가는 어떤 터널을 지나왔는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뒤돌아보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개인사는 거의 말씀하지 않는 분이지만, 그런 Q&A를 해주실 때까지 기다려 보려고 한다.(혹시 부담이 되진 않겠지?) 오래 살아야 할 일들이 자꾸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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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글이 닿기를. 마음을 깃털처럼 가만가만 쓰다듬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