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길 바라며.
안녕? 너희들에게 학창 시절은 어떤 기억이니? 나는 학교에서 지낸 12년 동안 대게 불행했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바다에서 내내 허우적대며 산 것 같아. 무슨 정신으로 그 긴 시간을 버텼는지도 모르겠어. 사실 너희가 이 편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죄책감을 느끼고, 갑자기 후회와 반성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기대도 안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들게 된 건 적어도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길 바라서야. 어디선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됐으면 해. 그럼 이야기를 시작할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거야. 당시에는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2003년 3월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해 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 등으로 확산된 호흡기 계통의 질환)가 유행하고 있었지. 어이없게도 한 아이가 그걸 구실 삼아 나를 사스 환자라고 놀리자, 모두가 전염병 환자 취급하며 피하더라. 내 손과 팔이 닿으면 썩는다면서 누구도 같이 놀려고 하지 않았어. 짝꿍이 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책상에 선을 그어놓고 내 물건이 선을 넘어가면 커터칼로 잘라버렸지. 수업시간, 쉬는 시간을 막론하고 지우개 가루를 뭉쳐서 뒤통수에 던지기도 했어. 나중에는 온갖 욕설이 적힌 쪽지를 몰래 등에 붙여 놓고 낄낄대며 웃기까지 하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둥절하며 쳐다보는 나 보면서 재밌었어? 나는 하나도 재밌지 않았어. 너희들의 웃음이 쇠 긁는 소리처럼 들리더라. 귀를 잘라내고 싶었어. 왜 내가 너희들의 미움을 받게 됐을까. 이제는 어렴풋하게 생각나지도 않아. 하지만 그때 받았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남아있단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어폭력의 수위는 점점 더 심해졌어. 온갖 욕설은 물론이고 소위 ‘패드립’이라는 부모 욕까지 했지. 부모를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모욕적인 말들이었어. 한 아이는 장기간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살아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왜 살아?”라고 하더라.(지금 대답해주자면 “너 같은 것도 살아있어서야.”) 나중에는 쌓이고 쌓였던 게 대폭발해서 ‘패드립’하는 애 얼굴을 가방으로 때렸더니 책상 위로 올라가 발로 밟더라. 선생님은 교탁에서 그걸 목격하고도 말리지 않았어. 애들 장난처럼 투닥대는 정도가 결코 아니었는데 말이야. 늘 그랬듯이 방관만 했어. 선생님의 대처는 절대 이 폭력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더해줬지.
다행히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교육에 적극적이고 무서운 선생님 반에 배정돼서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어. 은근한 따돌림은 존재했지만, 겉으로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따돌리지 못했거든. 착각이었지. 너희들은 기회를 노리며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야. 담임선생님이 출장을 가시자 학교 우두머리 남자애를 필두로 집단 린치가 시작됐어. 가위로 팔과 허벅지를 사정없이 찔렀지. 하지 말라고 소리쳐도 소용없었어. 가위로 찌르는 게 지겨워지면 주먹으로 온몸을 때렸지. 심지어 물건까지 던지길래 화가 나서 똑같이 던졌더니 학교 우두머리 남자애가 임시 담당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발로 밟더라. 산 지 얼마 안 된 분홍색 윗옷에는 선명하게 신발 자국이 생겼어. 직접 때리진 않았지만, 애원의 눈빛에도 외면하던 너희들도 똑똑히 기억해. 너희들도 무서워서 차마 나서지 못했다고 하지 마. 그렇게 잘못을 줄여보려고 하지 마. 그럴 자격 없으니까.
학원에서도 너희들의 폭력은 이어졌지. 째려보지도 않았는데 째려봤다고 화장실로 부르더니 때려보라고 하더라. 못 때리고 가만히 있으니 “이렇게 때려보라고!” 하면서 주먹으로 온몸을 때렸어. 거대한 창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가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때 내가 울었던 거 기억해? 너무 억울했거든. 그런데도 거대한 창으로 심장을 할퀴는 일을 멈추지 않더라. 어떤 형용사로도 수없이 심장이 파헤쳐지는 심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거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는 것만 알아둬.
중학생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어. 하지만 이미 초등학교 때 ‘왕따’였다는 소문을 들은 아이들은 아무도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지. 덕분에 뜨거운 불덩이에 가슴이 찢어발겨지는 고통을 느꼈다. 낙인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더라. 내가 특별히 잘못하지 않아도 조금만 밉보이면 새겨지는 거더라고. 한 번 새겨지면 절대 지워지지도 않지. 노비 낙인처럼. 어쩌면 내가 너희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노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물리적인 폭력은 줄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다. 대신 수법이 고도화된 정신적인 폭력이 늘었지. 당시에는 발신 번호를 마음대로 바꿔서 수신인에게 문자를 보낼 수가 있었잖아. 그걸 악용해서 ‘미친○, 죽어버려.’, ‘왜 사냐?’, ‘쓰레기.’, ‘너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음.’ 등의 문자를 보냈지.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르겠는 악의적인 문자에 시달리며 점점 더 정신이 피폐해졌어. 알고 보니 문자 보낸 애 중에는 평소에 조금 잘해줬던 애도 섞여 있더라고.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사람이 정말로 무서워지기 시작한 게. 웃는 가면 속에 어떤 얼굴이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아무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살아가는 기분을 알고 있니? 모른다면 언젠가 한 번쯤 꼭 경험해보길 바라.
고등학생이 돼서는 누군가를 사귈 의욕도 잃었어. 무기력과 우울에 시달리며 표류하고 있었지. 학교에 가면 잠만 잤던 거 같아.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있는 게 너무 싫었거든. 잠들면 조금이라도 이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계속 누워 있었지.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았어. 그런데 너희들은 간신히 쥐고 있는 생명줄마저도 끊어버리려고 하더라. 추운 겨울이었어. 교복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하교하는 내 모습을 몰래 핸드폰으로 찍어서 싸○월드 미니홈피(당시 유행하던 SNS)에 ‘고릴라’라고 올리고 조롱했지. 같은 반 애들도 댓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폄하하며 욕하더라. 그 이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어.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퇴까지 했었지.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 없다더라. 당연한 결과였지. 심리적인 거였으니까. 머리가 너무 아파서 얼마나 손바닥으로 때렸는지 몰라. 너희들 댓글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뇌를 갉아먹었거든. 아직도 상흔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어.
솔직히 여기에 적은 내용은 내가 당했던 수많은 괴롭힘 중 극히 일부야. 일부만 추렸는데도 글이 이렇게 길어졌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생겼니? 부디 이 글을 읽고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괜찮아’라고 하지 않길 바라.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 방관만 했어.’라고 생각하는 너. 네가 바로 가해자거든. 다른 건 잊어도 이건 잊지 마. 가. 해. 자. 야. 아마 세상에는 나보다 더 심한 학교폭력을 당한 친구들도 많이 있을 거야. 현재 진행형인 친구들 역시 있겠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너희들이 이들에게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너희들이 만든 구조에 희생당한, 당하고 있을 아이들이잖아. 이제 학교라는 거대한 미로에서 빠져나가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 줘.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야.
어느 가을.
* 학교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나 같은 사람도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부디 살라고, 살아남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