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해보험
대부분 독립책방의 공간에서 북토크가 열리다가 처음으로 도서관 강연의뢰가 들어왔다. 독서의 기록 출간 후 한 달 반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도서관 강의는 최소한 2달 전에 의뢰가 온다는 건 이후에 깨달은 사실이다. 처음 들어본 고척도서관이라는 곳이었다.
초보 저자의 마음은 ‘불러주면 우주라도 간다’이다.
지역이 서울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도서관 강연을 처음으로 수락했다. 이때는 퇴사 전이라 도서관에서 제안한 2번의 강연비용을 다 받아야 하는지 부담스러웠다. <독서의 기록> 출간 후 회사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출간 사전 품의를 받아야 한다고 연락을 해왔고, 1회당 10만 원 이상의 강연료는 받지 말라, 강의 전 사전 품의, 강의 후 사후 품의를 받아야 한다고까지 나의 활동을 제한했다. 휴직 중이라도 적용되는 사규라고 했다. 없었던 사규가 책 출간한 직원이 처음인 사업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인사와 충돌해서 좋은 점은 없다. 어차피 불평불만을 한다 하더라도 인사부 직원은 그냥 윗사람의 지시를 따를 뿐이니 하라는 대로 했다. 회사의 사규대로 강연료를 깎았다. 그때는 이 사유 때문에 퇴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9월 한 달 스위스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2주 후 바로 복직을 하고 그 주에 고척도서관 강연 근처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았다. 제주에 집을 두고 여기저기 떠도는 여행자 같은 기분이었다. 도서관 강연의 신청 인원이 23명이라고 했는데 띄엄띄엄 10여 명 되는 인원이 띄엄띄엄 입장했다. 동네 책방이나 온라인 북토크 때는 참여 신청 인원이 스무 명은 넘었고 대부분 참여를 했는데, 도서관은 신청한 인원의 과반수가 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그런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고 강연을 망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분이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강연을 들었고, 끝나고는 <독서의 기록>을 세 권이나 들고 오셔서는 사인을 부탁하셨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책을 꺼내 들고 심장이 뛰었다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셨다. 나중에 도서관 강연을 몇 번 더 다니다 보니 이런 분은 정말 드물다는 걸 깨달았다 (이 분은 현재 열혈 독자로 나의 커뮤니티에서도 맹활약을 하고 계신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무료로 운영이 되고, 책이 도서관에 있기에 대여해서 볼 것을 추천한다. 강연 프로그램이지 저자의 책을 구매해서 사인을 받는 강연이 아니다.
1주 후에 갔던 의정부 도서관은 강연 장소가 훌륭했다. 극장 같은 곳에서 강연하는 게 버킷 리스트에 있었는데 상상했던 장소였다. 70명이 신청을 해 주셨는데 30여 명 참여해주셨다. 단풍놀이 가기 딱 좋은 가을날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들어주신 분, 고개를 끄덕이시고 다양한 질문을 해 주신 분이 많은 곳이었다.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고 계신 노년의 신사분은 강연 끝나고 사인회 시간에 (이때도 3명 정도만 사인을 받으러 왔다) 책 한 권 있으면 그냥 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셨다. 당황했으나 당황한척하지 않았다.
12월에 마지막으로 했던 음성교육도서관에서는 단 한 명도 책을 읽어오거나 책을 가져온 사람이 없었다. 도서관 측에서 A4 용지를 청중들에게 나눠주고 사인을 받으라고 했다. 이쯤 되니 도서관 강연의 분위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유명작가의 북토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만약 남중, 남고에서 강연의뢰가 들어오면 강연료가 얼마인지 먼저 들어본다고 하셨다. 남중, 남고의 학생들은 반응이 절대 없고, ‘어디 한번 나 웃겨봐’라는 태도이기에 강연자로서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강연료는 (마음) 상해보험이다. 유튜브에서 김상옥 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사님 또한 남중에서는 절대 강연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맥락이었다.
도서관 강연료가 책을 낸 저자에게는 상해보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내 책을 읽지 않아도, 내 책을 사지 않아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도서관 강연이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님의 책을 안들고 도서관 강연회에 가서 다이어리에 사인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건 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