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나는 꽤 오랫동안 몸담았던 디지털 에이젼시(우리가 아는 웹에이젼시)를 떠나 UX라는 영역에 도전하고 있었다.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조금씩 UX를 경험하며 호기심이 생겼고, 느낌이 아닌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이유가 있어야 하며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라는 접근보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가 중요한 그런 부분에 당시 매료되어 조금은 무모한 이직을 감행했다.
당시 업계에서 나름 알려진 회사에 수년간 몸담으며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으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조금 더 많은 연봉과 회사 이름으로 흔들리는 마음보다 원하던 업무를 깊이 있게 해 보자라는 생각에 UX 전문회사에 그것도 팀장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엔 무슨 면접을 4시간을 보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당시 대표님의 고민도 이해가 된다. 나중에 이것과 관련해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회사 대표님에게 참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은 내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던 수많은 낮과 밤으로 채워졌고, 1년이 지나며 업무 지속 가능성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난 말 그대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 거라는 고집의 끝에 매달려 좀비처럼 뇌가 없이 출퇴근을 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듬해 봄, 회사에는 마에스터고를 졸업한 친구들이 몇 명 입사를 하였고, 같은 프로젝트를 해도 내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았던 상황이라 수습직원 신분의 20살 친구들과 별다른 교류나 사적 호기심 같은 것들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난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후 그들의 기억은 나를 스쳐간 수많았던 회사 동료들처럼 잊혀 갔다.
얼마 전 그중 한 명에게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받게 되었다. 혹시 자기를 기억하시는지, 잘 지내는지에 대한 안부. 그동안 꾸준하게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있었다고, 아... 맞다. 이 친구랑 인스타 친구였지.... 그 친구의 인스타를 들어가서 한참 동안 지내온 시간을 보며,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했고 현재 전공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가는 대화를 통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불편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 언제는 편하게 오라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얘기가 정리되었지만, 그 친구의 얘기 중 설레는 말이 있었다.
내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고.
의도적으로 그렸던 적이 별로 없고 살면서 몇 번 들었던 말이지만, 그 말에 마음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잠깐 사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논리와 정확성이 요구되는 부분에도 매력을 느끼지만 항상 바라왔던 그것 반대편의 것들, 나의 시선과 감정의 표현을 통해 어느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온전히 나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그림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나를 기억하게 하고, 생활에 작은 위로가 된다는 기쁨.
그 작은 그림이 다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본다.
마음이 심난하면 자주 바다를 찾는다.
다른 분의 작업을 보다가 저 갈매기를 따라 그리며 완성된 그림
내 기억 속 풍경, 모래와 바다 멀리 보이는 풍경 바다의 냄새 그리고 그 색들
바다는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바다를 찾아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시작되며 이미 복잡했던 혹은 답답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경험의 반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