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당일.
수술 시간이 되었고 수술용 가운을 입었다. 가족들의 걱정과 응원을 받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내부는 쌀쌀할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수술용 테이블 위에서는 수술 가운도 벗은 채 누워야 했다. 으슬으슬 떨고 있는 내게, 레지던트 선생님이 따뜻하게 데워진 수술용 천을 덮어주었다. 몸에 온기가 돌았다.
천장에는 수술용 조명이 있다. 눈을 감아 달라는 소리에 눈은 감자, 조명이 켜졌다.
잠시 뒤 수술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마취를 한다고 했다. 산소 호흡기가 씌워졌다.
"숨을 크게 쉬세요~"
"속으로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세세요."
'10, 9, 8, 7, ….'
자다가 깬 듯한 상태로 눈을 뜨니 수술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내 몸은 병실에 도착해 병원복을 입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목은 찢어질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몸조차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술이 잘 되었을까?'
수술이 어떻게 됐는지 가족한테 물어보고 싶었으나 물어볼 수 없었다.
부모님의 표정을 보니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망했나...?'
내 궁금증을 눈치채신 건지 수술에 대해서 엄마가 알려주셨다. 수술은 예상 시간보다 길어져 3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이 5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며 더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셨다.
내 상태는 처음 수술 날짜를 잡았을 때보다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암은 돌연변이었고 진행이 빨랐으며, 암이 더 번져있었다고 한다. 2주만 더 일찍 수술했어도 전이는 안 되었을 거라며 아쉬워하셨다. 오히려 너무 젊고 건강해서 진행이 빨랐던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폐암 4기가 되었다.
이 소식에 엄마는 또 한 번의 층격을 받으셨고 의사 선생님은 나름의 위로를 해주셨지만 위로로 들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나마 젊어서 수술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만약 노인이라면 개복한 것을 다시 닫았을 것이라고, 수술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다. 비록 폐암 4기 진단에 평생 항암제를 먹으며 살아야겠지만, 나름 빨리 발견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날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얻은 것이다.
수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젊었고, 수술할 돈이 있는 부모님과 보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상황을 좋게 보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아프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빵집에 다니지 않았고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더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마른기침이 잦고 숨쉬기 힘들어지며 아프기 시작했다면, 이미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수술이 더 일찍 잡혀서 전이 없이 수술이 완벽하게 끝났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항암약도 먹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쯤 완치 판정을 받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까?
면역력이 남들만큼 좋아서 덜 아프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때의 아쉬움이 많이 줄었다. 내가 건강 관리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쓸 수 있게, 평생을 관리하도록 어떤 장치가 걸린 셈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그동안의 나는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건강은_잃고_나서야_소중함을_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