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바라본 세상은 높고 크고 거대했다.
높은 벽은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고 있는 힘껏 달려도 끝나지 않는 운동장은 세상 무엇보다 넓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 있는 듯했다.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위대하고
때로는 안전했던 그 이름.
'어른'
무서운 어른을 피해 달려가던 그 길의 끝에 지쳐 잠든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몸이 커져 버렸다.
크고 넓었던 운동장은 고작 300미터 남짓밖에 되질 않았고 가로질러 건너는 데는 고작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담장은 고개를 치켜드니 그 속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낮고 허술했다. 언제든 맘먹으면 열고 나가고 들어갈 수 있는 크고 허술한 정문과 엉덩이 하나 겨우 앉힐 수 있을 정도로 작디작은 책상과 의자들이 꽉 들어찬 교실은 좁디좁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처럼 높고 커 보였던 무서운 선생님도 왜소하고 키 작은 '힘없는 어른'처럼 보였다.
이 모든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린다.
'그럼 그렇지, 꿈이었구나'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눈앞에 왜소한 체구의 선생님이 눈빛 가득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모습으로 말을 꺼낸다.
"아버님,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응?' 잠이 덜 깬 건가 하는 맘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평소보다 한창 걸리는 느낌이다.
'응? 아버님? 으... 응?!?? 아버님이라고?!!!!'
꿈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봤던 담임선생님과 묘하게 닮았지만 같은 선생님은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버님이라니, 농담이 심하시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났다. 반을 잘못 찾은 건가 싶어 두리번거리며 연신 죄송하다 인사드리며 서둘러 자리를 옮기려 하는데 언뜻 교실 뒤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어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