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찌니 Apr 28. 2024

세상에 혼자 남겨진 어른이

첫 문을 열다

00동 00 아파트 00호

'딩동'


대답이 없다.

두 번째 벨을 누르고 멍하니 기다리고 서있다. 문이 열려도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찾아온 길이었다. 그래서일까 대답 없는 벨소리에 오히려 마음이 안심되어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옆집 문이 열리며 쓰레기봉투를 든 아주머니가 나오시다 말고 귀신이라도 본 듯 멈칫한다. 얼굴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는 이내 입을 떼며 입술을 파르르 떤다.

"어디.. 갔다 이제와요..!!"

의아한 표정의 내 얼굴을 뒤로 한채 아주머니는 손에 쥔 쓰레기봉투는 까맣게 잊은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줌마는 내가 사라진 건 이 년 전쯤이고 기억나지 않는 내 아내라는 사람은 한참을 미친 듯이 나를 찾아 돌아다니다 몇 달 전 친정 가족들이 짐을 챙겨 데리고 갔다 한다.

현재 이 집은 빈집이나 마찬가지라며 집도 못 팔고 그대로 내려가서 휑하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이제 나타난 거냐며 하얗게 질렸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돌아온 혈색에  눈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반짝이기까지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내게 딸도 있다 했다. 갓 입학한 8살 딸..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딸은 유학 갔다고 들었다며 본인은 본 적이 없다 했다. 본인이 이 아파트에 이사 온 게  삼 년 전이라 그때는 우리 두 부부만 함께 있었다고 그러다가 이 년 전 내가 사라져 버린 거라 했다.


하아.. 찾아야 할게 더 늘어버렸다.

서류상에는 내 딸의 존재가 분명히 있는데 같이 살지 않았다니 엄마는 내가 사정이 있어 몇 년간 함께 같이 못했었다고만  했다. 엄마도 4년 만에 만났다 했으니  그간의 일을 물어봐도 알 길이 없었다.

지난 이 년간은 어쩔 수 없어도 그사이의 일들은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내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덜컥 겁이 났다.


그전에  우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가라앉혀야 한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초등학교 교실인데 지금 사십 대 중반이다. 다 큰척해보려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줌마의 질문세례에 더 많은 질문이 생기는 상황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더 있다가 무슨 실수를 할지 알 수가 없어 마침 쓰레기봉투에서 흐르는 물을 가리키며 아줌마에게 물이 흐른다 말을 했다. 당황한 아줌마가 급하게 인사를 하며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휴우..."

진정이 필요했다.

'난 왜 어른이 된 거지? 아니 난 왜 갑자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거지? 내가 어른이었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이도 함께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거지?' 뭔가 어마어마한 음모가 있을 것만 같은 상황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어른인 척 연기하느라 꾹 참고 있던 긴장이 풀리고 나니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두 다리는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꾹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눈이 뜨거워진다.


어느 쪽이 진짜이든 일단은 지금은 끊어진 기억을 이어 맞춰봐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닌 이상, 사십 대의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안 이상, 그들을 만나야 한다.


이전 05화 백만 가지의 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