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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Nov 18. 2023

만년 신입사원, 김팀장

괜찮아 열 번 떨어졌어도 열한 번째는 붙을지 모르잖아

아침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음이 울린다.

이번엔 꽤나 느낌이 좋았다, 준비하면서도 뭔가 두근두근 왠지 잘 될 것 같은 감이 뽝하고 오는 듯했었다.


두근두근..

메일을 열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괜스레 커피 한잔을 사러 간다.



저희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전해드립니다.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음...
함께 '하지 못하게'..


계속 한 구절이 확대되어 크게 꽂힌다.

제길..  이번에도 또 떨어졌구나.

차라리 너의 기획안이 이러이러해서 참 별로였어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주면 오히려 수정 보완이라도 할 텐데 싶은 괜한 억화심정에 속이 타들어간다.

어디든 화풀이라도 해대면 속이 풀릴까.

애꿎은 직원들에게 불똥 튈까 조용히 지갑을 들고 근처 커피 전문점에 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조용하게 샷 추가를 요청하니 센스 있는 직원이 뭔가 불쌍한 낌새라도 느꼈는지 서비스라고 그냥 넣어준다,


시원하네.

숨이 찰 때까지 한 모금 빨아 마시고 나니 속이 얼얼한 게 조금 진정이 되는 듯하다.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너무나 친절한 낙방통보는 차갑고 심플한 벽보보다 더 가슴이 아픈 거 같다.

 웃으며 욕 듣는 거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분명 거절당한 것인데 그 저변에 괜찮다 괜찮다 다독거려주고 싶어 하는 화면 너머의 누군가가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 마치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고 있는 마냥..


이로써 7번째 아웃이다.


처음이니 괜찮다 실수할 수 있다. 안 되는 게 당연하다 몇 번의 실패에도 이건 실패가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하면 금세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척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은 조금 쓰리고 아프다.

밤새워 고민하고 몇 날 며칠 머리 쥐나 가며 썼던 내용이라 더 쉽게 마음이 접히지가 않는다.


다시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진행중란에 있던 해당 파일을 꺼내 종료표시를 해두고 파일 위치를 옮겨둔다.


한 모금밖에 남지 않은 커피를 들었다.

아직 얼음은 채 다 녹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


조용히 탕비실로가 커피두봉을 털어 진하게 커피를 탔다.

다시 얼음 가득 커피잔이 채워진다.


자,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할 시간이다.

나에겐 새 커피가 채워졌고 컴 화면은 다음 기획안이 띄워졌다.


부족하면 채워야지 뭐.

커피를 리필했듯이 내 기획안에도 부족한 것을 찾아 채워 넣어야 할 시간이다.


기다려라 내 곧 다시 가마.


2020년  6월 22일,   글을 쓰고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3년 간 난 또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해왔을까?

그사이 법인을 설립하고 크게 번아웃도 오고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의 실패도 맛보았다.


매번 으쌰으쌰 힘내고 용기 내서 다시 일어나는 것도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차츰 배워갔다.

억 단위가 넘어가는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 함께 책임감을 느끼며 같이 밤새 고민하고 눈물 흘리며 담당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도 보았다.

많이 단단해졌나 싶으면 또 깨지고 눈물 나고 익숙해졌나 싶으면 또 새로운 상황의 등장으로 숨 가쁘게 상황을 모면해 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매 순간의 위기는 매 실패의 상황은, 매번 아팠다.


익숙해질 줄 알았지만 매번 크던 작던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단지 조금, 아주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 정도랄까.


시간이 주는 교훈은 그럼에도 이 시간은 지나갈 일이고 나는 또 살아낼 거라는 것이었다. 점같이 개연성 없어 보이던 일련의 작은 일들이 차츰 연결되고 관계성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것이 되어갔다. 시간의 흐름 속에 배움이 녹아있었고 내 삶은 그렇게 이어져 간다는 것이 가끔은 꽤나 큰 용기와 힘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난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쉽고 간단한 과정도 있고 어려운 심화과정이 있는 것처럼 난 무척 비싸고 긴 시간이 필요한 수업을 받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들어간 비용이 꽤 리스크가 큰 탓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무척 크고 오래가긴 했어도 그 또한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해 볼만했었다 말하게 된다. 이래서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하나보다. 힘들었던 것도 속상했던 것도 크게 아팠던  것도 결국은 할만했어라는 기억만 남겨두는 걸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실패는 힘들고, 아프고, 슬프지만,

과정은 어려워도 끝이 있음을 알기에 나아갈 힘이 생긴다.

힘듦을 견뎌내고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은 한번 맛보면 잊기 힘든 중독성에 다시금 도전하게 하는 매력적인 힘이 있다. 언제나 늘, 새로운 도전과 고난과 어려움에 맞닥뜨려도 꽤 재밌네 라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 건 아마도 지난 시간들이 내게 준 배움의 결과이겠지.

이젠 조금은 덜 비싸고 덜 힘든 수업료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겠지 생각하면 20년 뒤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부디 내가 잘 살아냈구나 칭찬해 줄 수 있는 인격과 인품이 되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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