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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Nov 08. 2024

아침밥 표류기

 아침밥을 먹지 않을 바엔 차라리 학교를 늦으라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배가 고파 아침에 눈을 뜨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만은 삼겹살까지도 가능하지만, 출근하기도 빠듯하기에 간단하면서도 건강한 아침밥은 늘 나의 관심사다.


 맛없는 음식은 죽어도 먹을 수 없었던 새내기 직장인 시절에는 연유 뿌린 떡, 달콤한 과일 주스와 같은 것들을 아침으로 선택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는 혈당을 생각해 달지 않은 음식도 먹을 줄 아는 6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달콤한 것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제법 현대인다운 메뉴인 샐러드도 먹어봤다. 맛있었지만 속이 너무 차가웠다. 오버나이트 오트밀도 먹었다. 비주얼을 욕심 내며 예쁜 유리 용기도 샀다. 레시피도 무궁무진해서 재밌었지만 아침마다 우유를 먹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우유를 먹으면 배에서 소리가 많이 나서 민망했다.


 식사만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는 바쁜 아침에 화장하면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하고 건강한 식단을 찾아 헤맸다. 전날에 만들어두기가 원칙이다. 이렇게 나름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것들은 계란과 그릭 요거트다. 아침으로 탄수화물보다는 양질의 단백질이 들어간 음식이 좋다는데, 이 두 식재료에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요즘은 이 두 가지를 활용한 아침 식사를 하곤 한다.


 계란은 주로 반숙으로 삶아 야채와 먹거나 에그 샐러드로 만들어 샌드위치로 먹는다. 그릭 요거트는 다양한 토핑을 얹어 먹을 수 있어 좋다. 그래놀라를 추가해 먹으면 점심시간까지 든든하다. 우유를 먹는 것과 달리 배가 안 아프다. 바쁠 때는 아침 도시락으로 들고 가기도 한다. 간편하면서도 맛있어 요즘은 그릭 요거트를 자주 먹는다. 그릭 요거트가 비싸서 유청 분리기를 하나 샀다.


 필리프 들레름의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소박한 일상의 순간을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포착한 에세이집이다. 읽다 보면,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었나?’ 생각하며 내 삶의 장면들마저도 미화되는 그런 책이다. 책을 여는 에세이인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말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 새벽 공기를 만끽하며 크루아상을 사러 가는 길, 돌아오며 크루아상을 맛보는 장면이 나온다.


 “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의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 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나의 아침은 이렇게 여유롭지 않다. 책의 장면은 내겐 환상 속의 아침이다. 아침은 새로운 기운이 샘솟는 시간이다. 공기마저도 새롭고 깨끗하다. 차가운 공기를 콧속에서 폐까지 집어넣으며 변화하는 계절의 풍경을 만끽하고, 세밀한 감각으로 삶의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어제 잘 안 됐던 게 오늘은 되겠지라는 조금은 낙관적인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는 그런 시간. 이 소중한 아침 시간을 활기 있게 보내고 싶다. 간단할지라도 마음을 채우는 맛있는 식사를 한 뒤 나에게 펼쳐지는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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