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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Oct 29. 2023

차박 그 이상의 리얼 노숙

뉴질랜드 로드트립 -웰링턴, 픽턴

 뉴질랜드 북섬에서 남섬으로 차를 가지고 이동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 웰링턴에서 배를 타는 것뿐이야. 사람만 이동한다면 비행기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겠지만, 우리는 차를 버릴 수 없었어. 그런데 배에 차를 싣을 공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간과한 거야. 사람만 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예약이 마감되더라고. 며칠 동안 사이트를 들락날락한 끝에 새벽 2시에 출발하는 배를 간신히 예매했어. 남섬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5시 30분으로, 거의 잠을 잘 수 없는 이동이라고 봐야 했지.     



 우리는 배를 타기 전까지 꽉 찬 하루를 보냈어. 바닷가의 모아이 석상을 시작으로, 야생 조류 보호구역도 구경하고 빅토리아 전망대에도 올랐어.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웰링턴의 상징인 케이블카랑 보타닉 가든을 구경하고, 분수가 설치된 바다에서 시내 중심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한참 걷기도 했지. 그러다가 자정쯤 차에 앉아서 최애 프로그램인 '나는 솔로'를 보고 있었어.     


 알림 문자가 온 건 그때였어. 기상 악화 때문에 출항 시각이 미뤄졌으니 새벽 5시까지 오라는 거야. 순간, 어디서 시간을 때워야 하나 굉장히 막막해졌어. 물가가 비싼 뉴질랜드에서 특히나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곳이 수도인 웰링턴이기 때문에, 서너 시간을 위해 비싼 숙소를 잡기는 아까웠거든. 도심 한복판이라 차박을 할 캠핑장도 없었지. 하다 못해 양치라도 하고 싶었는데, 밤이 되자 거리의 모든 공중 화장실 문이 잠겨버렸어. 이럴 땐 참 철저하기도 해라.


 우리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빅토리아 전망대에 다시 올라갔어. 밤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일도, 우리가 방해를 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았거든. 깜깜한 전망대에서 가지고 있던 생수로 대충 이를 닦고, 승용차 운전석에 누웠어.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은 채 눈만 붙인 진짜 노숙은 처음이었어. 그래도 오클랜드에서 웰링턴까지 가는 동안 차박 경험치가 쌓여 있던 터라 나름대로 잠이 오더라고.


 출항이 미뤄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몹시 당황했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어. 섬으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동이 트는 것을 보니 장관이었거든. 예정대로 새벽 2시에 출발했으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게다가 남섬 픽턴에 오전 9시쯤 도착하니 문을 연 카페가 많아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반찬 삼아 아침도 먹을 수 있었어. 노숙은 했지만 오히려 좋아! 우당탕탕 남섬 로드트립, 가보자고!



오늘의 과학
 오늘날의 뉴질랜드는 남섬과 북섬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지구의 대륙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위치와 모양을 바꾸고 있어요. 끓는 물 위에서 라면과 건더기 스프가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뜨거운 지구 내부가 끓는 라면물처럼 요동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얹어진 지각판이 갈라지거나 이동하는 것이죠. 남극 대륙과 호주, 뉴질랜드는 하나의 판으로 붙어 있다가 8천만 년 전쯤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도 뉴질랜드 땅은 하나의 덩어리였습니다. 그 후로 지각 변동이 계속되면서 최근 천만년 동안 남섬과 북섬이 분리되어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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