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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Nov 05. 202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뉴질랜드 로드트립 - 카이코우라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단연코 퀸스타운이야. 그런데 로드트립을 시작하기 전에  기사를 봤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뉴질랜드의 '카이코우라'가 선정되었대. 카이코우라의 주민들은  작은 마을이 퀸스타운만큼 번잡한 관광지가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어쩌겠어? 더 유명해지기 전에 얼른 들르는 수밖에.


 카이코우라는 과연 아름다운 마을이라, 캠핑장에 텐트를 치자마자 숙박을 연장하기로 결정했어. 아주 가까운 곳에 바다와 설산이 함께 펼쳐져 있었거든. 더 감동이었던 건 바다의 소리였어. 캠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자갈 해변이 나오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촤라락-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말로 예술이었어. 가만히 앉아서 산 꼭대기에 쌓인 눈과 말간 바다를 감상하 보면, 잔잔하게 명상 배경음이 깔렸어.

 촤르르르 쏴아-



 이렇게 훈훈하게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카이코우라의 바다는 내 잡념을 없애준 것으로 부족했는지, 뱃속의 모든 것까지 가져가 버렸어.


 그러니까, 카이코우라의 명물인 고래 투어에서 일어난 일이야. 예약을 몇 번 바꿔가면서 맑은 날을 고르고 골라 바다로 나간 날이었어. 나는 고래를 볼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지. 카이코우라의 바다에서 고래를 만날 확률이 어찌나 높은지 "고래를 못 볼 시 환불"이라는 파격적인 정책까지 있었거든. 그렇지만 바다로 나갈 때는 맑은 날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파도가 중요하다는 걸 전혀 몰랐어. 일평생 육지에 산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야. 일기 예보에서 기온이랑 강수량만 볼 줄 알지, 파고나 바람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


 불행하게도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바다가 엄청나게 출렁이는 날이었어. 배를 타기 직전에 멀미약을 사 먹긴 했는데, 이미 늦었던 것 같아. 사실은 멀미약이 몹시 비싸길래 상술이 아닌가 고민하면서 마지막까지 망설였거든. 그때까지 나는 제대로 된 뱃멀미를 겪어본 적이 없었어. 조금 속이 불편한 게 멀미의 전부인 줄 알았던 거지. 그러니까 뱃멀미를 얕잡아봤던 교만함과 파도의 중요성을 몰랐던 무지함의 콜라보로 배에서 내내 속을 게워내야 했어.


 나는 술을 많이 마셔도 위로는 절대 게워내지 않는 사람이라, 어린이를 벗어난 후로 토를 한 기억이 없어. 그런데 이번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어. 파도 때문에 배가 출렁일 때마다 식도와 위 사이에 있는 분문이 꿀럭- 열리는 게 느껴지더라니까. 먹은 게 없다 보니 꺽꺽 소리와 함께 누런 액체만 계속 나왔어. 나 혼자 종이봉투를 다섯 개는 쓴 것 같아. 어느 순간에는 도저히 못 참고 배의 맨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어. 의자에 앉는 것보다 몸이 덜 흔들릴 것 같았거든. 정말로 죽겠다 싶었는데, 승무원은 단호하게 일으켜서 의자에 앉히더라고.


 뱃멀미의 끔찍한 점은 바다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였어. 차멀미를 할 땐 잠시라도 차를 세울 수 있잖아. 망망대해에서는 방법이 없더라고. 배가 멈춰있어도 움직여도 파도는 계속 치니까 말이야. 와중에 고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나는 이미 고래고 나발이고 살려달라는 생각뿐이었고. 승무원들이 고래 대신 알바트로스, 거북이 같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주었는데, 당연히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두 시간 동안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고래를 못 볼 시 환불" 정책에 따라서 환불을 받은 게 카이코우라 고래 투어의 전부야.


 굉장한 건 뭔 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코우라가 너무 좋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는 거야. 배에서 내리자마자 멀미는 잦아들고 다시금 풍경이 눈에 들어왔거든. 이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인정이지?


고통스러웠던 Whale Watch 배. 그 뒤로 마냥 아름다운 풍경 좀 봐.


오늘의 과학
 귀 고막 안쪽에는 회전 운동을 감지하는 반고리관과  가속 운동, 기울임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이 있습니다. 움직임 정보를 뇌에 전달해서, 움직이는 동안 내 몸과 시야가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달리는 차 안에 있으면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눈으로 들어온 정보와 귀에서 전달하는 운동 정보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게 되지요. 또는 배나 비행기가 실제로 심하게 흔들려서 반고리관과 전정기관이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강한 자극을 받을 때도 멀미를 느낍니다. 이때 뇌 연수의 구토 중추를 자극해서 토하기도 하는데요, 멀미약은 구토 중추로 신경 자극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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