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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새 태교여행

임신 4주 차

by 여행하는 과학쌤

7월 말 휴가 시기가 하필 생리예정일이었다. 휴가지는 그리스. 예쁜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기 위해서 더운 날씨에 그리스 여행을 강행한 것이라 마트에서 탐폰을 잔뜩 샀다. 평소에는 면생리대를 빨아 쓰는데 여행 중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일회용 패드 생리대도 한 박스 사고, 생리통을 대비한 진통제도 챙겼다.


떠나는 날 아침에 마지막으로 임신 테스트를 해 보고 한 줄을 확인했다. 지난 몇 달간 '임신인가?' - '아니군.' 하는 상황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니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특히나 강행군이었다. 한국 출발부터 한국 도착까지의 날짜가 총 9일인데, 호텔 숙박은 5박만 했다. 나머지는 비행기에서 자거나 공항에서 자는 일정이었다. 그리스까지 직항기가 없어서 아부다비에서 경유해야 했고,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 자킨토스 섬을 들르느라 비행기를 총 8번이나 타야 했다. 하루에 만오천보씩 걷고 계속 이동하느라 잠을 편히 못 잤으니 여행 내내 힘든 게 당연했다.


여행 중에 배가 아픈 날들이 많았는데 생리통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매번 생리통이 심한 편이다. 며칠씩 배가 아프다가 뒤늦게 생리가 터질 때가 많아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온갖 바다에 들어가고 여행이 다 나갈 때까지 생리를 하지 않았는데, 여행이 힘들어서 주기가 틀어졌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와인도 먹고 커피도 마셨더랬다. 그리스에는 와인이 주스보다 흔했다.


여행 막바지로 갈수록 음식을 잘 못 먹는 날들이 많아졌다.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체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만 먹어도 목구멍까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더위를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4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그리스 식당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펄펄 끓는 야외에 테이블을 깔아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돌아오는 공항에서였다. 게이트까지 몇 걸음을 못 걸을 만큼 속이 안 좋아져서 캐리어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라운지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소파에 누워서 깜빡 잠들었다가도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벌떡벌떡 깨어났다. 급성 위염이든 뭐든 내 몸이 정상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배를 누르는 안전벨트가 거슬리게 아팠고, 독감 걸린 것처럼 팔다리가 자꾸 쑤셨다. 정말 이상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꺼냈다. 너무 분명한 두 줄이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테스트선에는 임신했을 때만 분비되는 호르몬(hcg)과 결합하는 항체가 고정되어 있다. 고정된 항체가 충분한 양의 hcg와 결합하면, 테스트기의 테스트선에서 색깔 선을 확인할 수 있다. 임신 극초기에는 혈중 hcg 농도가 충분히 높지 않아서 테스트선이 희미하거나 안 보일 수 있다. 임신테스트기의 대조선에는 이동식 항체를 인식하는 2차 항체가 고정되어 있어서, 소변이 정상적으로 잘 이동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비임신일 때는 대조선에만 한 줄, 임신일 때는 대조선과 테스트선에서 두 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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