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vs 맥시멀리스트, 당신은 어느쪽 입니까
맥시멀리스트였던 사람들만이
세련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물건을 최소한으로
소유하려 노력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미니멀한 노트 필기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지현우 배우가 나온 에피소드를 우연해 보게 됐다.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3G폰을 쓰고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잠자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 나 또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설치며 소파와 침대 없이 생활한 지, 새 옷을 사지 않은지 1년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노트 필기를 할 때도 나는 최대한 미니멀함을 추구하려고 한다. 필사할 때는 주로 검은색 펜만 사용하고 가끔 포인트로 다른 색의 펜을 사용한다. 형형색색의 볼펜으로 노트를 알록달록하게 꾸미기보다 서로 다른 굵기와 질감의 검은색 펜으로 미세하게 변화를 주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분 따라 어떤 날은 노트를 꾸며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신문이나 잡지를 재활용한다. 분위기 있는 사진이나 무늬가 있는 여백을 활용하면 나름 감성적으로 노트를 꾸밀 수 있다.
내가 구독하는 익스트림 미니멀리스트(extreme minimalist) 유튜버 중에는 만년필 한 자루만 지닌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못할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필기구를 가지고 있다. 마스킹 테이프 6개, 라미 만년필 1자루, 연필 7자루, 12색 색연필과 5색 형광펜, 포스트잇, 모눈 메모지, 15cm 자, 작은 커터칼, 스마트핏 필통, 노트 3권 정도가 있다. 찾아보면 자잘한 도구들이 더 나오겠지만 어쨌든 셀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유하고 있다. 막상 리스트를 나열하고 보니 생각보다 개수가 많지만 문구류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는 단출한 문구 살림이라 변명해 본다.
필기구 소비 욕구를 조절하는 나만의 사소한 팁이 있다면 펜꽂이에 들어갈 만큼의 펜만 소유하는 것이다. 펜꽂이는 일회용 커피 컵을 재활용하고 있다. 남편이 요리사로 일하는 카페에서는 상호가 박힌 테이크어웨이 컵 대신 디자이너의 그림을 넣은 컵을 사용한다. 그는 매일 커피 한 잔을 들고 퇴근하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컵을 모아두었다가 여러 가지 용도로 재활용한다. 돈이 없어서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아직 마음에 드는 펜꽂이를 발견하지 못해서다. 내 인생을 함께 할 펜꽂이를 만나면 언제든 지갑을 열 준비는 되어 있다. 개성 없는 흔한 플라스틱 펜꽂이보다는 지금의 일회용 컵이 훨씬 마음에 드는 것뿐이다.
미니멀리즘을 논할 때, 물건을 정리하고 서랍장을 비우면서 번뇌에 사로잡힌 마음을 정돈하고 정화하는 심리적 효과를 주로 이야기한다.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목적과 계획 없이 쇼핑을 할 때가 있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남의 소셜미디어를 구경하다 감각 있는 인플루언서가 핫해 보이는 아이템을 소개하면 하나씩 지른다. 열심히 살았으니 이 정도 보상은 해줘도 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수납할 공간이 모자라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를 하려면 서랍장이나 선반을 사야겠지만 집이 너무 좁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월급은 적고 쇼핑을 하느라 모아둔 돈도 없기에 다시 우울해진다.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다시 쇼핑을 한다. 이 경우 미니멀리즘은 무한히 반복되는 ‘쇼핑의 윤회’에서 벗어나 소비 없이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꾸리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 만 가지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각각 있어야 할 자리에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하는 맥시멀 리스트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에 둘러 싸여 있을 때 심리적 안정을 느끼며 타인과 소비의 취향을 공유할 때 삶의 만족과 즐거움을 느낀다. 요즘처럼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소비 능력도 남다른 재주가 된다. 물건을 고르는 안목을 갖춘 사람들 중에는 대개 맥시멀 리스트이거나 맥시멀 리스트였던 이들이 많다. 소비 경험에서 얻은 센스와 노하우로 쇼핑몰 창업을 하고 마케터나 카피라이터, 아트 디렉터나 광고 디렉터, 쇼호스트같이 소비와 세일즈 감각을 살리는 직업을 택해 크게 성공하기도 한다. 일상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 물건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공유하는 일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이어받는 일도,
현대의 플렉스(Flex) 유행을
충실히 따르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극단의 중간쯤에
‘각자의 중도’가 존재한다.
‘필요 없는 건 버려라’
‘이것은 반드시 필요하니 사라’
어떤 조언을 듣든 자기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도 문구류 소비에 별 관심이 없다가 독서 노트를 쓰면서 다양한 브랜드의 검은색 펜을 구입해 사용하게 됐다. 필기구와 문구 브랜드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관련 정보를 독서노트 유튜브 채널 구독자나 필사 모임 참여자들과 나누면서 취미의 밀도가 진해지고 있다. 필기구들을 하나둘 구매해보니 맥시멀 리스트였던 사람들만이 세련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비에 무수히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어떤 물건을 취하고, 어떤 물건은 취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매의 눈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렴한 볼펜 백 개를 살 돈으로 값나가는 고퀄의 만년필 하나를 살 수 있는 안목과 결단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물건을 최소한으로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쪽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미니멀리즘을 취향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생태환경과 불교의 ‘중도’ 사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구를 황금알을 무한히 낳는 거위 대하듯 여기며 살아간다. 요즘에는 ‘환경친화적(eco-frendly)’이고 ‘지속 가능한(sustainable)’ 한 제품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생산 방식이 아무리 변해도 소비 관념이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
가령,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노트 10권을 사서 9권은 안 쓰고 버리는 것과 평범한 일반 노트 두세 권을 사서 알뜰하게 쓰는 것, 어떤 쪽이 환경을 보호하는 데 더 나을까. 일회용 컵을 쓰지 않겠다고 쓰지도 않을 텀블러를 열 개, 스무 개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일일까. 얼마 전 친환경 기업인 파타고니아에서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 “필요하지 않으면 재킷을 사지 말라 (“Don't buy this jacket. Unless you need it)라는 마케팅을 했는데 오히려 매출이 40% 상승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소비자가 회사의 친환경적인 가치를 응원하는 현상이 더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만 시장에서 산 3만 원짜리 점퍼를 5년째 입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친환경’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찰에 빠진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맥시멀리즘의 반대가 아니다.
무소유와 무한한 소비욕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미들(middle) 리즘이 더 정확한 용어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소비와 소유를 무조건 최소화하거나 적대시하는 가치관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내게 무엇이 얼마큼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될 수 있는 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방향으로 소비 습관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인 ‘중도’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 중도의 경계를 찾아나가는 일은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중도의 미니멀리즘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이어받는 일도, 현대의 플렉스(Flex) 유행을 충실히 따르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극단의 중간쯤에 ‘각자의 중도’가 존재한다. ‘필요 없는 건 버려라’ ‘이것은 반드시 필요하니 사라’ 둘 중 어떤 조언을 듣는, 나의 행동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스스로 하고 있느냐, 하지 않느냐가 미니멀리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미니멀리즘은 맥시멀리즘의 반대가 아니다. 어쩌면 무소유와 무한한 소비욕 중간 어딘가에 있는 '미들(middle) 리즘이 더 정확한 용어가 될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읽은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불교 경제학은 근대의 물질주의 경제학과 당연히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불교가 문명의 본질을 욕망의 증식이 아니라 인간성의 순화에서 찾기 때문이다 (..) “불교는 ‘중도’ 이므로 결코 물질적인 복지에 적대적이지 않다. 해탈을 방해하는 것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집착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며 ‘인간성의 순화’라는 문장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절이었다. 우리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물건이 아니었다. 물건, 쇼핑, 소비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간성을 순화할 수 있는 방향의 소비도 있을까. 어떤 소비를 지혜로운 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인간성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공부해야 했다. 인간의 내면에는 무한한 욕망이 증식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욕망을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으며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와 낭비를 합리화하는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나 아닌 타자와 생태환경을 생각하는 이타심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앞뒤 없는 소유욕도 있지만 내가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누고 베풀기도 한다.
고작 연필 하나, 볼펜 하나 사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천 원짜리, 만 원짜리 물건 하나 사는 행위로도 인간성을 순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지성과 양심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어떤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비참해지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수련과 단련의 과정이라 여기면 마음가짐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품는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 결국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