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없애고 생긴 새로운 습관

by 미료

침대 없이 생활한 지 팔 개월이 되었다. 샤워 후 푹신한 매트리스에 풍덩 몸을 던지는 일, 스탠드를 켜 놓고 책을 읽다 잠들던 순간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바닥 생활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토마토에 물을 주는 것과 함께 이불 정리도 이제 일종의 아침 의식이 됐다. 매일 이불을 차곡차곡 개는 동안 이불과 베개의 역할을 곱씹어 보게 됐다.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오는 깊은 밤, 이불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를 따스하고 포근하게 안아준다. 이불이 있어서 긴긴밤 슬프지 않다. 갓난아기를 안는 엄마의 팔처럼, 베개는 보드랍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받쳐준다. 잡념과 망상으로 가득 찬 머리를 베개 위에 뉘일 때 잠시나마 세상만사를 잊고 조용한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지금 사용하는 이불과 베개 커버는 엄마가 손수 만든 천연염색 제품이다. 쓰면 쓸수록 빛깔이 은은해지고, 살균 및 탈취 효과도 있다면서 엄마는 여러 번 강조했었다. ‘장모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이불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Y는 소년 같은 표정으로 턱 밑까지 이불을 바짝 당겨 덮곤 한다.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나도 그 이불이 엄마의 품인 양 상상해 본다.


침대가 없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잘 때를 제외하고는 잘 눕지 않는 거다. 침대가 있을 때는 아침에 눈 떠서 스마트폰을 보다, 점심시간까지 잠옷 차림 그대로 누워 있던 적도 더러 있었는데 침구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넣어두니 눕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바닥이 카펫이라 더욱 눕고 싶은 욕구가 없어졌다) 침대를 처분하고부터는 독서도 항상 앉아서 하게 됐다. 거실의 식탁이나 작업실의 책상, 발코니의 테이블에서 읽고 썼다. 2020년 1월 일기에 ‘눕기보다 걷는 사람’이 되자고 새해 결심을 적어놓았는데 뜻하지 않게 다짐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오늘은 4km를 걸었다. 오래간만에 날씨가 화창해서 스완 강변에 갔다. 온화한 겨울빛에 반사된 강물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날이었다. 10대 커플 한 쌍이 나무 벤치 위에 한 몸처럼 앉아 눈빛으로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소녀가 소년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슬그머니 허리를 돌렸다. 낯 뜨거울 장면도 한낮 내리쬐는 태양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낭만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밤마다 동네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만나 끌어안고 놀던 남자애가 생각났다. (그 많던 성욕은 누가 가져갔을까) 정처 없이 미술관 내부를 배회하는 사람처럼 걷다가 카페로 들어섰다. 주말이면 항상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매일 수백 장의 화덕 피자와 수백 잔의 에일 맥주를 만들어내는 강변의 작은 카페였다.


야외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맥주 대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빛과 함께 실려 오는 강바람의 정취를 즐기다 가방을 열어 노트를 꺼냈다. 어젯밤 읽은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의 몇 구절을 필사할 생각이었다. (그 많던 성욕을 혹시 책이 가져갔을까) 장지문을 열 듯 노트를 펼쳤다. 책과 노트의 겉장이 정말로 ‘문’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누구의 허락 없이 나 아닌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문. 내가 사는 현실은 덧없고 속절없이 애타게 흘러만 가는데 책과 노트 속 세상은 순간인 채로, 영원인 채로 정지된 것 같았다. 아름답고 눈부신 것만 살뜰히 모아다가 바깥 세계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여며놓은 것이 바로 책, 노트였다.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만 그 문을 열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책을 펼쳐놓고 문장을 필사하는 행위는 책의 세계를 향한 의례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 나 번역가, 편집자에 대한 경배가 될 수도 있지만, 찬양의 주된 대상은 역시 세종대왕이시다. (만세!) 한글이 얼마나 예쁘고 독창적인 문자인지 필사를 하면서 새삼스레 알게 됐다. 24가지의 자음과 모음이 퍼즐처럼 끼워져 탄생한 수많은 문장과 이야기, 그것들을 베껴 쓸 때마다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단 한 문장이라도 그것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실감한다. 아무리 고집 센 사람이라도 책 속의 문장에는 쉽게 설득되는 걸 보면 책의 위력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노트 한 페이지를 좋아하는 문장과 나의 감상으로 빽빽이 채웠다. 이번엔 절간 문을 닫듯 살포시 책과 노트를 덮었다. 이불 개기와 필사에 대해 쓰고 나니, 하루 동안 겪는 모든 것이 신성한 의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깜빡이고 물을 마시고 젓가락을 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마저 인식할 수 있다면, 머그잔과 수도꼭지, 탁상시계도 찬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축복과 기적으로 가득 찰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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