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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담긴 참외

(글쓰기 모임 여름학기 5회, 30분 글쓰기)

by 백작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참외 농사를 지었습니다. 수박, 오이, 자두, 벼 등 보고 자란 게 많지만 유독 참외 밭이 기억납니다. 참외 밭은 약 100미터 길이로 하우스 여러 동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우스마다 문 쪽에 번호를 붙여 두기도 합니다.

수확을 한 후 농한기도 있다고 들었지만 참외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겨울에 참외를 팔아야 그나마 값을 높게 받으니 참외 하우스가 한겨울에 큰 몫을 했습니다. 참외 모종이 얼지 않도록 따듯하게 해주는 건 기본입니다. 거적을 덮어줘야 했고 낮엔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거적을 벗겨야 했습니다. 숨 막히는 참외 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100미터를 그냥 걸어가도 숨이 찰 텐데 아침엔 참외 모종이 햇빛을 받도록, 저녁엔 보온을 유지하도록 해주려니 여간 힘들고 귀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척해 봐도 소용없었습니다.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참외 밭에 가서 한 동이라도 거들어야 부모님이 챙겨야 할 하우스 개수가 줄어듭니다.

농사가 씨앗만 심어 놓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요. 위의 거적 이야기는 접붙인 참외 모종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참외 하우스에 가운데를 기준으로 양쪽, 두 줄로 100미터씩 심어 두었을 때 일하는 이야기입니다.

참외와 호박 씨앗을 심습니다. 모종이 자라면 '접붙이기'를 합니다. 참외 줄기와 호박 줄기를 칼로 절반(어린 기억으로는) 씩 자른 후 둘을 이어 줍니다. 접붙이는 용 집게도 있었습니다. 둘이 한 몸이 되는 거지요. 참외 뿌리보다는 호박 뿌리가 더 강한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접붙인 후 옮겨 심어야 하는, 얇은 비닐 화분엔 미리 흙도 채워둬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알바 시간이지요. 화분에 흙 하나 담으면 1원씩 쳐준 기억이 있습니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은 참외 밭마다 돌아다니면서 일손을 서로 도왔습니다. 며칠씩 화분에 흙 담은 일은 이어졌습니다. 겨울방학이었거든요.

참외를 따야 할 때도 일손이 필요합니다. 꼭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가위질을 잘해야겠지요. 100미터입니다. 한두 개도 아니었고요. 노란 참외만 골라 따서 수레에 싣고 고랑을 지납니다. 수레 운전을 잘해야 참외가 상하지 않습니다.

따온 참외는 물을 채워둔 고무 대야에 담급니다. 가라앉은 참외는 버립니다. 물에 뜬 참외만 흙만 조금 씻은 후 건져냅니다. 그리고 크기대로 모아 박스에 담습니다.

참외 박스는 일반 박스보다는 두껍습니다. 어린 시절 박스만 접어주어도 도움 된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학교 가지 않는 일요일엔 참외 밭에 간 적이 많습니다.

참외 농사를 지을 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참외를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참외를 따서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단단합니다. 초록 꼭지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먹어보면 바로 딴 것인지 며칠 되었는지 압니다. 그 당시 참외를 따면 청량리 시장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 후에 전국으로 참외가 배송되겠지요. 소비자에게 참외가 닿으려면 수확후 최소한 하루 이틀은 지나갑니다.


스무 살 이후로는 참외 밭에 가본 적 없습니다. 제가 공부 및 취업으로 경남 땅에서 살고 있거든요. 마트에 가면 참외를 파는 매대에 먼저 눈이 갑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참외가 싱싱한 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최상품이지만 현장에서 바로 따서 먹는 참외만 할까요. 경남에 살면서 더더욱 참외를 사 먹지 않게 됩니다.

지금은 친정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데요. 이웃 친척 아주머니가 농사지은 참외를, 엄마는 구매해서 저희 집에 보내기도 합니다. 친정에 갈 때 마루에 있던 참외를 챙겨오기도 하고요. 모양 때문에 상품가치가 없는 참외라도 먹으면 신선합니다.

일손 부족할 때 잘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음식에 참외가 들어가 있습니다.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연결되어 있는 참외입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건강해야겠지요? 저희 집 참외 밭은 규모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조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도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지만 땅도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식구들 먹을 만큼 벼농사 짓습니다. 글쎄요. 앞으로 벼농사도 가능할까요. 부모님도 나이 들어갑니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참외 농사는 과거 건강했다는 증거겠지요.

맛난 참외라도 참외 농사를 눈으로 본 저로서는 구매하려면 고민이 필요합니다. 참외를 잠시 들었다가 제자리 둡니다. 일을 거들어 드리느라 땀도 많이 흘렸지만 현장에서 가위로 참외 꼭지를 잘라 손에 잡아본 참외의 신선함이 기억납니다.

https://blog.naver.com/giantbaekjak/2235347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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