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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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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8년 전부터 #김영웅의책과일상 이라는 해쉬태그로 여기 페이스북에 독서감상문을 올려왔다. 그 이후, 아카이브 용도로 사용하는 티스토리 블로그, 그리고 내 글쓰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싶어 약간의 허세 어린 시도로 시작했던 브런치, 그리고 알라딘 나의 서재에도 같은 글을 포스팅해오고 있다. 450편가량의 감상문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경우 어떤 책을 검색하면 내 글이 뜨기도 한다. 8년 동안 쉬지 않고 지속한 결과일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그러니까 2017년 언저리, 페이스북에는 서평가들이 넘쳐났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몇몇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나도 있다. 평균 일주일에 한두 편 올리는 것을 지속했더니 초창기에 내 글에 반응을 많이 해주던 분들도 이젠 ‘얘는 참 끈질기게 올리네’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떨어져 관망하시는 것 같다. 감상문을 450편가량 올리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기고 글쓰기 연습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은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지금도 내 글에 반응해 주시는 분들이 거품이 빠지고 난 이후 찐 독자이지 않을까 한다.


한 가지 밝히자면, 처음부터 나의 독서감상문의 목적은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게 아니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독서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다른 하나는 내가 읽은 책을 기념하기 위하여. 두 가지 모두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책을 소개하거나 설명하거나 광고하는 데에 전혀 목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내 글은 서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도 나는 독서감상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고 나중에 기억하기 위한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기념하는 의식을 치러왔던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읽어주시고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셔서 나로서는 뜻밖이기도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다.


나의 글쓰기 연습은 대부분 감상문으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일기보다는 감상문 쓰기를 권한다. 대뜸 아포리즘 식으로 에세이를 고집하는 분들이 계신데, 주로 자기가 글을 좀 쓴다고 스스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어느 단계에서 정체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잘 쓰는 것처럼 보이고 싶기도 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하는 등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휩싸여 계신 것 같다.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글쓰기를 정면으로 승부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글쓰기 이전에 나는 독해력과 문해력이 기본이라 생각한다.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글을 쓰게 되면 남들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글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처음엔 쓸 재료들이 많을 수 있으나 그것들이 소진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마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은 한 가지밖에 없다. 관찰을 많이 하는 것. 즉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행위를 늘려야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뱉어내려고만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좋은 글은 메시지가 뚜렷하고 쌍방의 소통이 되는 글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 저자와의 소통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드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그 고유한 순간들을,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소중한 것들을, 가능한 붙잡아 두는 유일한 방법이 나는 감상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낼 줄 아는 능력,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이 모두를 감상문 쓰기로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거나, 자신이 글 좀 쓴다고 우쭐대기도 했지만 더 이상 진전 없이 정체된 것 같을 때 나는 감상문을 꼭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서평 말고 감상문 말이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안타까운 현상 중 하나는 글쓰기를 좀 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포리즘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게 멋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멋지고 아름다운 문장, 한 번 들으면 가슴에 팍 꽂히는 문장을 읽고 느낀 쾌감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뭔가 지혜롭게 보이고 싶기도 하고, 신비로움으로 포장시켜 스스로를 베일에 쌓이게 만들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문장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 나는 정말 두 손 두 발 들고 말리고 싶다. 절대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을 것이다. 쉬운 말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현학적으로 보이고 함축적으로 보이는 어떤 문장을 써낸다는 건 허세에 찌든 것과 진배없다. 짧은 글, 아포리즘, 등으로 자신이 글 좀 쓴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보면 연민이 생긴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판 우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긴 글 쓰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가며 말이 되는 글을 쓸 필요가 있다. 그런 글을 쓸 줄 아는 게 먼저다. 그런 글을 쓸 줄 모르면서 감상적이기만 한 글, 뭔가 깨우쳐 주려거나 가르치려는 뉘앙스가 짙게 묻은 글을 쓰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으면서도 스스로 그 앞길을 차단시키고 있는 꼴이다. 겸손하게 성실하게 논리를 갖추고 쉽게 말이 되는 글을 먼저 쓰는 것을 연습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바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 같은 것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들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존하는 글쓰기와는 성격이 좀 다른 글쓰기 모임을 해볼까 한다. 처음 글쓰기를 접하는 분들 말고, 글쓰기를 어느 정도 하다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나의 주요 고객이 될 것이다. 수요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3개월이나 6개월 코스로 글을 한 달에 한두 편 쓰고 치열하게 나누고 첨삭까지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볼 생각이다. 부디 이 모임으로 정체된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깨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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