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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길 Mar 20. 2020

'비정상'적인 사랑의 연대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는 대중을 향해 이 세상 수많은 ‘윤희’와 ‘쥰’ 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편지이다. 영화는 동일한 성별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질타와 멸시를 받아야 했던 윤희와 쥰의 인생을 조명함으로써 이들의 존재와 사랑을 무(無)로 치부하지 않고 유(有)로 승격시킨다. 윤희와 쥰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 사회에 의해 묵살당하였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도록 강제되었다. 윤희는 자신의 부모에게 쥰을 사랑한다고 하자 부모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연행되었고 친오빠에 의해 남자와 결혼하고 직장을 얻어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치장되었다. 쥰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한국 사회를 떠나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빠가 있는 일본으로 갔다.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료코에게 쥰은 자신은 지금까지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이로울 것이 없어 숨기고 살아 자신을 숨긴 것과 같다고 말하며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이처럼 윤희와 쥰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제되어 허울 뿐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가족이 이들의 삶을 박탈하는 부정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사회와 가족에 의해 서로와 이별하고 허황된 삶을 살아온 윤희와 쥰은 역설적으로 가족을 통해 재회하고 새로운 인생을 영위한다. 이는 쥰의 고모인 마사코가 쥰이 윤희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고 우편으로 보내자 윤희의 딸인 새봄이 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엄마와 쥰이 만나게끔 시도하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사코와 새봄에게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잣대가 아닌 오로지 쥰과 윤희의 행복만이 중요한 것이다. 마사코와 새봄의 도움을 통해 일본을 여행하게 된 윤희는 여태 억압해왔던 자신을 해방한다. 한국에서 윤희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응대하며 자신을 위한 유일한 행위인 흡연도 타인의 눈을 피해서 한다. 윤희는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규정되어 엄마 또는 언니와 같은 대명사로 지명된다. 타인에 눈에 비친 윤희는 무색무취의 존재이다. 윤희의 전남편과 친오빠는 윤희가 주변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고 말하고 윤희가 결혼하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무색무취의 윤희는 일본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와 향기를 되찾는다. 한국에서 모두를 멀리 했던 윤희는 일본에서 새봄과 대화를 하며 새로운 관계를 재형성한다. 윤희는 새봄이 담배 피는 것과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말하고 자신이 새봄한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린다. 또한, 새봄이 옛날 애인에 대해 물어보자 언제나 가까이 가면 좋은 냄새가 났다고 말하고 카메라가 동생 때문에 대학을 못 간 대신 엄마한테 받은 것이라고 말해 자신의 과거를 새봄과 공유한다. 새봄과 눈 싸움을 하며 처음으로 웃음을 크게 터뜨린 윤희는 즐거움을 되찾고 새봄과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윤희는 일본에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재형성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윤희는 쥰을 향한 자신의 감정, 쥰과 함께 했던 시절의 자신을 인정한다. 이는 쥰을 만나기 전 윤희가 거울 앞에서 용모를 단정히 하는 모습, 스카프, 귀걸이를 통해 외모를 꾸미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바텐더에게 계속 일본어로 말하다가 친구분은 만났냐는 물음에 맛있는 것도 먹고 집에 놀러도 가고 산책도 하고 그랬다고 한국어로 답하는 윤희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윤희의 대답은 바텐더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한 것이다. 이는 윤희가 타인에 의해 강제로 억눌렸던 쥰을 향한 감정,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인정하게 되는 도화선으로 기능한다. 윤희는 쥰을 만나기 전 기대에 차 설레하고 쥰을 몰래 만난 후 택시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이처럼 쥰을 향한 윤희의 사랑은 윤희를 살아있게 하고 생생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쥰과 윤희의 사랑은 감각적이다. 이들의 사랑은 피상적인 언어로 입증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윤희와 쥰은 상대방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윤희는 쥰을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쥰과 윤희의 감각적 사랑은 두 사람의 몇 십년만의 재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윤희니?” “오랜만이네” “그렇네” 이 세마디만 할 뿐, 모든 대화와 감정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시선과 발자국 소리에 담겨 있다. 사회와 타인들에 의해 부인되어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형태를 띄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감각을 통해 구체화되어 현실에 실존하게 된다. 쥰과 윤희가 서로에게 쓴 편지는 이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서사적 도구로서 기능하고 관객에게 이들의 감정을 전달할 뿐이다. 이는 쥰이 편지에서 “너를 만나게 되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윤희가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난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않을거야.”라고 편지에서 말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이 서로와 공유한 감각을 느끼지 못한 관객들을 위한 것이다. 쥰과 윤희의 사랑은 언어적 한계로부터 탈피하여 감각적 사랑으로 승화하였다. 



윤희의 편지는 윤희의 과거와 미래, 쥰을 향한 윤희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윤희는 쥰을 사랑한다고 하자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친오빠가 고른 남자와 직장으로 점철된 거짓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쥰의 편지를 받고 일본에 가 새봄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쥰을 재회한 후 박멸되고 윤희는 주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윤희는 자신을 억압한 친오빠와 전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 자신만의 식당 갖기라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윤희가 자신을 억압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탈피하여 누구의 것도 아닌 고유한 윤희로 승격한다. 이는 윤희의 표정과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피로하고 억눌렸던 윤희의 표정은 설레하고 희망에 찬 표정으로 바뀌어 얼굴에 늘 미소를 띄고 있다. 또한, 윤희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한테 스스로 벌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그래 우린 잘못한 게 없으니까.”,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으면 좋겠어.”


이 부분을 통해 윤희가 쥰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성을 사랑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성을 사랑하는 윤희의 정체성이 윤희의 삶 전반을 결정할 만큼 윤희에게 중대한 것이며,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포획하려는 사회의 구차한 노력은 실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에 ‘정상’, ‘비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편협하고 기득권의 이익에 기반한 사회의 규범과 기준에 근거하여 ‘정상’, ‘비정상’을 판단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타인에 대한 혐오를 양산한다. 이성애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이성애가 생물학적 번식을 가능하게 하므로 정상적인 사랑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인식이다. 여성 동성애자는 대표적으로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할 수 있으므로 이들도 생물학적 번식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번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각종 시술을 통해 임신하려고 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성애자들과 동성애자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성별이다. 수많은 사랑의 형태가 존재하며 이들을 정의하고 규정할 수 있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윤희와 쥰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을 폭력으로 치부하여 이를 묵살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발현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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