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손님이 될 테야.
"아 그 손님 진짜 싫어. 아니 저번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쳐다봤다니까?"
"아 저 손님 온다. 네가 나 대신 주문받으면 안 될까? 나 정말 싫어서 그래."
바리스타는 기본적으로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손님 나름이다. 바리스타가 주문도 받기 싫은 손님은 어딜 가든 있기 마련. 런던의 동네 카페. 그곳에서도 동료들과 서로 네가 주문을 받으라며 등을 떠밀었던 진상 손님이 있었고, 묘하게 내 기분을 나쁘게 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나는 그 계산대 앞에서 다양한 손님들을 마주하며 '바리스타가 좋아하는 손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참에 내가 깨닫게 된 기준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아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1.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하는 손님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인은 좀 딱딱한 손님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내 생각이 바뀐 건 런던에서부터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마주친 손님들은 나와 너무 달랐다. 그들이 바리스타인 나에게 건넨 말들과 반응은 늘 다정했다. 그것은 마치 그들만의 오래된 문화 같아서 너무나 당연한 거였고, 물론 그곳에 속해있지 않았던 나는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가령, 나에게 러블리나 달링이라고 부를 때나 내가 만든 커피를 받으며 내뱉는 감탄사를 들을 때 등등.
자, 우리나라에서 카페에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런던에 가기 전의 내 모습은 딱 저랬다. (아마 대부분 비슷하겠지.)
"안녕하세요. (간혹 인사를 건너뛸 때도 있다.) 라테 한 잔 주세요."
바리스타가 라테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카페를 나간다.
"안녕히 계세요."
그러니까 런던에서 마주쳤던 손님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물론 더 담백하게 말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안녕 러블리! 오늘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니! 음, 라테 한 잔 부탁할게!"
바리스타가 라테를 건넨다.
"와, 하트가 왜 이렇게 예뻐! 고마워 달링!"
카페를 나간다.
"다음에 또 보자! 좋은 하루 보내!"
a. 그들이 자주 했던 인사말
Hi Lovely! / Hi darling! (러블리라고 들을 때는 괜히 기분이 더 좋다.)
Have a good day! (좋은 하루 보내!)
See you later! (다음에 봐!)
Thank you, Cheers! (고마워!)
b. 커피를 받으며 말하는 감탄사
Lovely!
Perfect!
Marvellous!
Look so good! / so yummy!
기계적으로 주문을 받고 커피를 건네다가도 그들이 내가 만든 커피에 설탕을 넣듯 저렇게 감탄사를 얹으면, 괜히 내 기분도 달았다. 그리고 괜히 다음번엔 더 잘 만들고 싶어 졌다. 마치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다정한 말에 익숙해졌고 어느새 나도 달링과 러블리를 말끝에 다정하게 붙이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손님이 되었다. 감탄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하는 손님 말이다.
2. 바리스타도 나와 동등한 사람임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손님
너무 당연한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당연한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특히나 런던은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일을 해서 그런지 은근히 (묘하게) 상대를 차별하는 사람들을 나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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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파운드입니다."
아저씨. 그는 나를 은근히 하대하던 손님 중 한 명이었다. 그 아저씨는 계산대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꺼내 우르르 내 앞에 떨어뜨렸다. 건넨 게 아니라 떨어뜨렸다. 알아서 주워 가라는 식으로.
보통 손님들은 지폐 대신 많은 동전을 건넬 때 미안하다고 표현했다.
"미안해, 내가 동전밖에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 크게 미안할 일도 아닌데. 그 정중한 태도에 바리스타는 오히려 고맙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보통 손님들과 전혀 다른 그의 행동에 나는 역시 기분이 나빴다. 이 사람 봐라? 그는 마치 내가 동전을 잘 세는지(셀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내 손을 봤고, 나는 보란 듯이 휘리릭 동전을 세어 남은 동전을 그에게 줬다. (한국인이 제일 잘하는 게 수학이에요 아저씨.) 아니 나도 그냥 바닥에 놓았다. 알아서 가져가라고. 그는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 여자애 봐라? 이런 눈빛으로.
이런 일이 빈번했고, 그 아저씨와 비슷한 손님들을 만나면 나도 굳이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 바리스타의 친절함은 그런 이들에게 쏟고 싶지 않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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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skinny cappucino." (스몰 사이즈 무지방 우유 카푸치노.)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나타나는 여자. 그녀는 늘 인상을 쓴 채로 매일 우리 카페에 왔다. 굉장히 도도하게 계산대 앞에 와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늘 마시는 고정 메뉴를 말했다. 보통 손님들이 당연스럽게 말끝에 붙이는 please도 붙이지 않았다. 그러면 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녀의 카푸치노를 만들어 건네곤 했다.
"이거 무지방 우유 맞지?"
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재차 확인하는 그 질문. 어찌나 기분이 별로던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마치, 너는 한번 말하면 까먹을 수 있으니 내가 다시 확인을 해야만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 나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미건조하게 "네."라고 말했다.
물론 재확인할 수는 있다. 중요한 건 표정과 눈빛,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심이 바리스타의 눈에 보인다는 것. 똑같이 재확인을 해도 어떤 손님은 이렇게 말을 했다.
"아 죄송해요, 혹시 무지방 우유 사용하신 거 맞죠?"
계산대 앞에선 다 보인다. 그 사람의 속뜻과 인품이. 바리스타이건 아니건 다 떠나서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임을, 다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임을, 나는 일을 하면서 매번 되새겼다.
3. 웃는 손님, 밝은 기운을 전달하는 손님
어딜 가든 진상이나 기분 나쁜 손님은 있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어디에 가든 좋은 손님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만났던 좋은 손님들을 종합해보자면 그들은 얼굴 표정과 눈빛부터가 다르다. 맑고 밝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가식적이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얼굴의 주름마저도 아름답다. 고스란히 그들의 고운 성품이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리라.
"Hi Lovely! How are you?"
"Oh! That's Lovely! Wow amazing, kind of you!"
"Have a good day, dorothy!"
그중 단골손님들은 언제나 나의 안부와 근황을 물었다. 일은 힘들지 않은지, 쉬는 날엔 뭐 하는지, 런던에서 지내는 건 어떤지. 그들의 질문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 그래서 그들이 카페에 올 때면 나는 태도부터가 달라졌다. 커피 한 잔도 더 맛있고 예쁘게 만들어서 건네어주고 싶었다. 괜히 할인도 한번 더 해주고 싶고, 스탬프도 한 개 더 찍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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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날이 너무 좋죠!"
운동복 차림에 옆에 들고 있는 요가매트. 그녀는 막 요가 수업을 끝내고 커피 한잔 마시러 온 듯했다. 운동 후 개운해서인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너무나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 자체가 너무나 밝고 긍정적이어서 괜히 내가 힘이 날 정도였다. 나는 그녀가 주문한 라테 위에 어여쁜 하트 하나를 만들어 건네었다.
"어머!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햇살 같은 미소라는 게 이런 뜻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웃음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빛났다. 나는 자동 반사적으로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과연 단순히 운동 후 개운해서 지었던 미소였을까?
4.
바리스타로 일해보니 바리스타의 마음을 알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카페에 갈 때마다 내가 만났던 상냥한 손님들을 떠올린다. 그들처럼 행동한다. 조금 더 다정하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그리고 조금 더 환한 웃음으로. 카페를 나올 때면 그전엔 안 쓰던 문장을 용기 내어 직원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늘 바리스타가 좋아하는 손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