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향수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아.

by 아름나무



1.

"도로시, 너 친구들이 자주 온다. 너네 나라 여기서 되게 멀잖아."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몇몇의 친한 친구들이 이곳을 놀러 왔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친구와 유럽을 여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잠시 살고 있는 곳에 그들을 초대할 수 있어서.


그들이 런던에 오기로 확정이 나면 나는 둥실 거리는 마음을 겨우 움켜잡으며 이런저런 구상을 한다.

여길 갈까? 이걸 같이 먹을까? 여기도 가면 좋겠다, 우리 집에 오면 이 음식 만들어 줘야지!


<뭐 필요한 거 없어?>


행복한 고민을 하다 보면 친구들은 한결같이 내게 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 메시지를 핑계 삼아 필요한 걸 이것저것 부탁하다 점점 런던에 적응을 하면 할수록 나는 딱 한 가지만 부탁한다.


<뭐 딱히 없는데. 아, 오모리 김치찌개라면 몇 봉지만!>


만날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연락은 잦아지고, 친구를 맞이 할 준비는 다 되어간다.

몇 월 며칠, 몇 시 히드로 공항 도착.


<나 비행기 내렸어. 이제 곧 나간다.>


반가운 마음으로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 뒤에야 끝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 분명 반가운 재회인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왜 어제 본 것 같은지. 우정은 늘 이런 식이다.

A friend of mine in my london room, 2019





2.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 친구 A. 딱 2년 전 이맘때. 그녀의 첫 유럽여행이었다. 나는 과감히 긴 휴가를 냈고, A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함께 여행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런던에 온 이후로 제대로 된 첫 여행이었다. 함께하는 약 2주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많이 들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가 없었고 런던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A가 런던에 있을 일주일 동안 우리가 머물 숙소는 다름 아닌 내가 머무는 우리 집, 나의 방이었다. 그녀가 오기 직전, 고요한 나의 방은 시끌벅적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자칭 서로의 여행 메이트였고 늘 다음 여행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같이 유럽 가고 싶다.

영국이랑 프랑스 가고 싶다.

기네스 마시러 아일랜드 가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거다. A는 큰 캐리어와 배낭을 들고 우리 동네, 우리 집, 나의 방에 왔고, 거기서부터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늦가을. 늘 외롭게 홀로 다니던 일터와 동네를 친구와 같이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는 몹시 행복했다. 본격적으로 내 휴가가 시작된 후로 우리는 런던을,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그리고 파리를 여행했다. 우리의 일정은 강행군이었지만 여행의 모습은 너무나 우리다웠다.




'우리에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 너무 소중한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찬란했다.


모든 게 좋았다. 함께 감탄하며 걷는 여행지의 거리들도, 맛보는 음식들도, 그리고 친구와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도. 좋게만 끝날 줄 알았는데 문제는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반겼다.


바로 우리가 헤어진 후. 2주간의 여행이 끝나고 A는 스위스로 넘어갔고, 나는 런던으로 돌아온 그 후부터였다. 그녀의 짐으로 가득 찼던 내 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빈자리가 생겼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런던에서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다는 건 내게는 아직 낯선 일이었다. 여행의 시간은 한 밤의 꿈처럼 지나갔고, 다시 전쟁터 같은 일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다시 바빠졌고 달라질 건 없었다. 여전히 커피를 만들었고, 방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마음이 자꾸만 허했고 밤마다 슬프게 일렁거렸다. 친구가 왔다가 간 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그 빈 공간에는 런던의 쌀쌀한 바람만 불었고, 나는 그때부터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만큼.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소용돌이가 강하게 몰아칠 때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외로움은 건너 건너 한국을 상기시켰고,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물밀듯 그리워졌다. 한국 음식, 내가 좋아했던 장소, 친구들, 그리고 가족. 그렇게 한동안 마음앓이를 했다. 시간이 약인 건지 다행히 앓던 시간도 결국 지나갔지만 그 후로 나는 이유 없이 두려웠다. 또 이런 감정이 나를 휘몰아칠까 봐.





2.

A와 헤어지고 몇 달 후, 이번엔 친구 C와 포르투갈을 가게 되었다. 이 또한 신나는 일이었다. C와는 오래전부터 같이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늘 기회가 잘 닿지 않았는데 내가 런던에 가게 되어서 드디어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각자 다른 출발지에서 떠나 포르투갈에서 만나는 게 꽤 인상적인 포인트이기도 했다. '친구랑 이런 여행을 하게 되다니. 나는 복 받은 게 분명해.' 나는 다시 신나고 말았다.


예약해둔 숙소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역시나 어제 본 것처럼 특별한 인사도 없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시작했다. 2월의 포르투갈. 해가 짧고 흐린 날의 연속인 지독한 런던 날씨와 달리, 그곳의 햇살은 밝고 길었다. 그 흥겨운 곳에서 나와 C는 일주일을 보냈다. 역시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늘 여행을 노래 부르던 우리가, 그래 마침내 여행을 하게 된 거야. 생각지도 못했던 포르투갈이라니. 너무 감사하다. 2 월치 고는 따뜻한 리스본과 포르투를 우리는 걸었고, 구경했고, 흥얼거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헤어짐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유난도 호들갑도 떨지 않으며 담담하게 헤어졌다. 마치 동네 친구였을 때 종종 만나고 헤어지던 싱싱 과일가게 앞에서처럼. 하지만 C가 떠나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 후, 지난번처럼 한동안 마음을 앓았다. 내내 비가 오고, 흐리고 어두운 겨울 런던의 날씨는 꼭 내 마음 같았다.




3.

그 후로도 여러 명의 친구들이 런던을 왔다 갔고, 반가운 재회를 했다. 다행이었던 건 런던 살이에 적응을 하면 할수록 심했던 마음앓이는 조금씩 옅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헤어지는 날만큼은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렁였고 조금 힘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향수병이었다. 그들이 가고 남은 자리엔 늘 향수(homesick)가 나를 반겼다. 나는 깨달았다. 친구들이 곧 나의 향수라는 걸. 그것은 꼭 향수(perfume) 같아서 한동안 쉬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툭, 툭 건드렸다.



그래서 그런 걸까. 런던에서의 나의 일상이 익숙해진 뒤에도, 한국의 친구들에게서 런던에 놀러 갈지도 모른다고 연락이 올 때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정인데도 나는 반가우면서 반갑지 않았다. 마냥 신나지가 않았다. 전보다 많이 심하진 않겠지만 혹시 몰라. 그리움이 나를 건드리면 또 갑자기 와르르하고 무너질까 봐, 나는 그게 두려웠다.



얘들아, 너네가 왔으면 좋겠는데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여기선 보고 싶지 않아.



Time we spent togeth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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