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곳에서 너답게 살아보는 거야

나의 현재를 동사로 말해보는 연습.

by 아름나무


1.


"Morning, What can I get you?"

"Morning~ can I get a regular latte, please?"


(좋은 아침이에요. 뭐 드릴까요? / 좋은 아침이에요~ 레귤러 사이즈 라테 한잔 주시겠어요?)


아침 7시부터 9시. 시침과 분침의 움직임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출근시간. 그 시간마다 아침인사를 나누는 단골손님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이들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들의 출근 루틴 중 하나는 튜브를 타기 전, 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우리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를 한 잔 테이크 아웃하는 것. 그중 아침 요깃거리로 플레인 크루아상이나 팽오쇼콜라를 사가는 이들도 있다. 깔끔한 오피스 복장. 어떤 신사의 시원한 향수가 내 코를 자극하고 어떤 여인의 구두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Cheers! Have a good day."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젠틀한 미소를 띠며 특유의 영국식 억양으로 땡큐가 아닌 치어스를 말한다. 또각또각. 그리고 카페를 나가 출근길을 이어 걸어가는 발걸음.


그리고 나는 작아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가 마음이 복잡한 채로 커피를 만들곤 했다.



'나도 깔끔하게 오피스룩 입고 오피스로 출근하고 싶다'

'나도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일 하고 싶다'

'앉아서 일하고 싶다, 몸 그만 쓰고 싶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앞으로 뭐하지?'





2.


생각해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런던의 지독한 겨울 날씨도, 나를 은근히 무시했던 손님이나 동료들과의 갈등도, 가난도, 향수병도 아니었다. 그것이 큰 요인이었다면 나는 런던과 짧은 기억만 남긴 채 작별을 했을 것이다.



'쟤는 나보다 저걸 더 잘하네.'

'지금쯤이면 제대로 취직해서 열심히 돈 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커리어 쌓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왜 나는 이거밖에 못하지?'

'저 사람은 좋겠다. 자신감도 넘치고 영어도 잘하고'

'쟤는 좋겠다. 런던에서 유학을 하는 거면 집에 돈이 많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건 런던에 오기 전부터 존재했다. 바로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재잘대는 어떤 이의 소리. 비교하거나 다그치거나 자책하거나 부러워하는 소리.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내는 소리였다.


나는 그것을 한국의 교육방식, 한국식의 진저리 나는 사회적 시간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나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한국식 잣대'를 들이대며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다면 난 이러지 않았을 거라고. 보암직한 자기 합리화였다.


나는 워킹 홀리데이 기간 내내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다. 아니 의미를 찾아내야만 했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직장에 들어가 자신만의 커리어를 시작할 무렵의 나이였으니, 나는 대충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며 무언의 증명을 해야만 했다. 마치 어딘가에 진행상황, 성장 척도를 보고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야.

난 여기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내 친구들처럼 나도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나는 나를 갉아먹기 바빴다.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3.

생각이 복잡해질 때마다 종종 엄마를 찾았다. 어느 날, 그때도 마찬가지로, 8시간의 시차를 무시한 채 어김없이 나의 어리석은 고민을 그녀에게 늘어놓았고 그날, 엄마는 내게 이런 답장을 보냈다.


<욕심을 내려놔. 그냥 조금 다른 곳에서 너답게 살면 돼.>


그녀가 내게 보낸 두 문장이 내 마음을 탁, 하고 쳤다. 맞네. 맞아. 결국 다 내 욕심이네. 난 여기서 무얼 바랐던 것일까. 아니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하루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지혜로운 그녀는 몇 문장을 더 보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야. 그냥 너답게 즐겨.>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스톱!

엄마 덕분에 나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소리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자 그래, 그래서 지금 너는 귀국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 여기서 더 살아보고 싶어. 좋아, 그러면 너는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경험을 하고 싶어. 여행하고 글 쓰고 사진 찍고 싶어. 그래 됐다, 그러면 그렇게 당분간 살아봐. 그거면 돼.




그리고 엄마 외에도 고마운 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아무 편견 없이 나를 받아들이던 동료, 손님, 친구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 굳은 사고는 점점 더 말랑말랑해지곤 했다.



"도로시, 근데 너 아이들 가르쳤다면서 왜 여기서 커피 만들고 있어? 너네 나라에서 일하면 돈 더 많이 벌 거 아니야."

"그건 맞아. 그냥 여기서 살고 싶었어. 경험을 하고 싶어서."

"아, 그렇구나."


"도로시 앞으로 뭐 하고 싶어?"

"아직 막연한데요. 글 쓰고 사진 찍으면서 살고 싶어요. 학교도 가고 싶고."

"오~ 좋다. 너랑 어울려! 하면 되지~ 잘 될 거야."



그들은 그 이상의 말을 절대 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새로운 용기를 내게 되었다. 아니 그러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직업, 커리어와 같은 명사로 나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나의 지금을 동사로 말하는 것.



저는 지금 커피를 만들고 있고요. 여행하며 글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어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을 나답게 표현한다는 건,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최선을 다해, 생생하게, 나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바로 나의 런던을 나답게 즐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사람의 사고란 하루아침에 바뀌기 난무한 것이고, 나는 그저 연습하고 노력할 뿐이었다. 몇 번을 연습해야 괜찮아질지 달라질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여기서 그만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전부터 내가 원하고 꿈꾸던 런던이라는 것.


상념에 빠질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런던은 그때마다 반짝였다.

나를 꼭 붙잡듯. 돌아가지 말라고. 나랑 조금만 더 같이 있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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