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가, 리아와 도로시.
1.
나는 인복이 많다. 내가 단연코 자부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정말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런던에 갈 때도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그곳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날 것 같았다.
그러나 런던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고작 동료들이 전부였다. 영어도 자신감도 내 맘 같지 않았을 때는 모임 같은 곳을 나가보아도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불편하기만 했다. 외국인도, 한국인도 친해지기 어려웠고 나는 점점 더 외롭기만 했다.
'아 나 인복 많은데 인복 어디 있는 거야. 착하고 마음 잘 맞는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이면 나는 충분한데 그게 안 채워지니 갈증만 났다. 그렇게 친구 없이 몇 달을 혼자 보내며 외로움에 익숙해질 무렵, 내가 살던 집에 같이 살던 하우스메이트가 집을 나가게 됐고 주인아주머니는 새 메이트를 구하셨다.
"도로시, 나도 한국인이 좋아서 한국인이 들어왔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랑 친해지면 좋을 텐데 그렇지?"
그녀는 내가 몹시 외로워한다는 걸 아셨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말은 정말 현실이 되었고, 한국인 여자 한 명이 우리 46번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큰 캐리어를 들고 집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날, 우연인지 인연인지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안녕하세요!"
긴 생 머리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던 그녀의 첫인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S는 나보다 3살 어렸고 런던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쭈뼛쭈뼛 내 생일 선물로 디퓨저를 건네었다.
"아 이거 큰 거는 아니고요. 동네 구경하다가 아주머니가 언니 생일이라고 하셔서 선물 준비했어요."
"아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생일인 바람에. 안 줘도 되는데... 너무 고마워!"
런던으로 와서 처음으로 맞은 내 생일. 런던은 내게 S를 선물로 보내주었고, 우리의 인연은 윔블던의 어느 작은 집에서 시작되었다.
도로시, 자 네가 원하던 친구! 둘이 재밌게 보내봐!
2.
"언니, 언니랑 바깥에서 놀고 집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것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함이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컷 대화하며 놀 수 있는 사이. 집 안에서 헤어지는 사이. 그래서 늘 마지막 인사는 2층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던 우리.
그녀와 나의 사이는 무난했다. 내가 바랐던 것처럼 처음부터 아주 가깝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조급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쌓여야 할 것 같았으니까. 내가 언니여서 그런지 S는 늘 조심스럽고 사려 깊고 예의가 바랐다. (그때 나도 아마 조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화와 시간이 조금씩 쌓여가며 우리는 점차 가까워졌고,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툭 하고 꺼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나의 흥과 블루투스 마이크 덕분이었다.
특별할 거 없던 어느 날, 퇴근 후 운동하며 옛날 노래를 듣다 갑자기 흥이 나버렸고 (흥 나는 일이 드물었다!) 나는 끝내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냈다. 마이크의 전원을 켜고 아이유의 노래를 부르며 1층으로 내려오던 그때, 방에서 나와 나를 쳐다보던 S의 눈빛은 분명 반짝였다. 우리는 거실에서 몇 곡의 노래를 불렀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요일 저녁. 그날 우리는 불금을 보내네 마네 유난 떨면서 집 근처 펍을 돌아다니다 결국 맥주만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역시 신나게 노는 건 집이 최고지! 옛날 노래와 맥주는 금세 우리의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역시 한국 옛날 노래가 최고야!
그때였다. S가 자기의 흥과 끼를 꺼내 보였던 게. 세상 차분할 것 같은 애가 90년대, 2000년대 가수 창법이며 춤이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따라 하는데 정말... 맙소사.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그녀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푸하하 아 너무 웃겨. 너 이 노래 나왔을 때 되게 어렸는데 어떻게 알아?"
"언니 저 하도 TV를 끼고 살아서 모든 프로그램을 다 꿰차고 있었어요."
그녀는 옛날 노래는 물론이고 최신 아이돌 노래와 춤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었고, 오죽했으면 내가 너 연습생 안 하고 뭐했냐고 말할 정도였다. 이 많은 흥과 끼를 감추고 있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녀는 BTS의 노래와 춤의 핵심 포인트도 다 알길래 혹시 아미(Army, BTS 팬덤 이름)냐고 물었더니 능청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저 아미는 아니에요~"
흥겨웠던 우리들의 금요일 밤. 주인아주머니는 종종 키친에 들어오시며 마음껏 놀라고 우리에게 말하셨다. 조용히 지내던 애들이 갑자기 한국 노래를 불러대며 흥겨워하니, 그 모습이 보기 좋으셨나 보다. 나는 그날 남아있던 향수병이 완벽하게 사라질 만큼 즐거웠다.
"우리 여름 되면 공원에 마이크 들고 가서 노래 부르자."
"언니 너무 좋아요!"
우리는 그날, 블루투스 마이크 덕분에 숨길 것 없는 사이가 되었다.
3.
"리아~"
"도로시~"
그 사이 S는 런던 살이에 적응을 더 하더니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영어 이름을 만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도로시와 리아로 불렀다. 꼭 그게 애칭 같았다. 애칭을 부르는 만큼 우리 사이는 돈독해졌고, 공교롭게도 리아가 나와 같은 카페 (다른 매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우리는 나눌 이야기가 더 풍부해졌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더 재밌게 놀았다. 쿵짝이 잘 맞는 친구랑은 무얼 해도 재밌기 마련이다. 약속했던 대로 날씨 좋은 어느 날, 드넓은 공원에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가 실컷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시간이 나면 각자의 일터에 놀러 가 서로를 구경하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맞을 때면 아침 산책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하고, 주변 나라로 여행도 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피자 먹으러 나폴리 가자, 연어 먹으러 노르웨이 가자 했는데 정말 연어를 먹으러 2박 3일 오슬로(노르웨이의 수도.)를 다녀오기도 하고. 같이 무언가를 할 때면 우스꽝스러운 동영상도 잔뜩 남겼다. 우리는,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추억들을 핸드폰에 고스란히 담기 바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우리들의 저녁 식사.
<아 오늘 진짜 극혐. 리아야 오늘 삼겹살에 된찌 콜?>
<헐. 언니 너무 좋아요. 끝나고 모리슨(마트 이름)에서 만나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을 때면 나는 종종 리아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고, 그녀는 그 요청에 대부분 응했다. 우리는 마트에서 만나자마자 일상을 늘어놓으며 장을 봤다. 메뉴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원칙이 있다면 최대한 지친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음식. 맥주나 와인은 필수였다.
그렇게 키친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파스타, 스테이크, 라면, 그리고 수많은 한식들을 맛있게 먹으며 우리는 서로의 어제와, 그리고 지금과, 앞으로의 내일을 얘기했다. 밥 정이 참 무섭다고 리아에게 어마 무시한 밥 정이 들어버렸고, 나는 우리의 저녁식사가 가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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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 살이든 무엇이든 낯선 곳에서 잘 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 잘 맞는 친구. 다른 친구들도 고마웠지만 특히 리아 덕분에 나의 런던 살이가 무척이나 재밌었다. 그때 그곳에서 그녀가 곁에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추억들은 없었겠지. 나는 인복이 있는 게 분명하다.
3살 많은 언니를 옆에서 잘 챙겨주고, 웃겨주고, 때로는 나보다 더 언니처럼 내 고민도 들어주고, 조언해주던 내 친구 리아. 리아는 런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조만간 피자 먹으러 나폴리까진 못 가더라도 나폴리 피자 1등이라는 그 레스토랑에 가서 리아와 추억 보따리 풀며 웃음꽃 좀 피워봐야겠다.
리아야, 몇 번씩이나 말했지만 너는 나의 선물이야. 고맙고 미안하고 또 고마워. 언니는 언제나 네 편이고, 너를 가장 많이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