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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Mar 13. 2024

8. 이스라엘 키부츠의 결혼식

온 마을이 준비하는 두 사람의 행복

7월의 어느 날 룸메이트 루시와 함께 데이오프를 사용했다. 시간을 내어 생활에 필요한 여러 생필품을 사려고 인근 도시에 다녀오려는 것이었는데, 스데보케르에서도 구할 수 있는 샴푸를 굳이 베르셰바(Be’er Sheva)까지 사러 나간 것은 다른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아시안 음식이 먹고 싶었던 것. 한국 음식을 하는 식당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만만한 중국 음식이라도 인근 도시에 방문해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베르셰바 도시 전경 (이미지 출처: www.israel21c.org)


베르셰바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된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로 스데보케르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작지 않은 규모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도시인 베르셰바는 텔아비브에서 약 115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약 2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는 이스라엘에서 나름 8위에 해당하는 대도시였다.


베르셰바 도심 주거지 전경 (이미지 출처: www.worldjewishtravel.org)


버스를 타고 도착한 베르셰바에서 루시와 나는 제일 크다는 쇼핑몰로 향했다. 몰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필요한 것을 골라 산 후 푸드코트로 가서 마침내 중국 식당을 발견했는데, 나름 맵다는 음식을 주문했는데도 중식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잠깐의 나들이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온 나는 저녁에 발룬티어 관리자 타냐의 일을 도와주러 가야 했다. 마을에서는 곧 큰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결혼을 위해 온마을 사람들이 팔 붙이고 나서 준비를 도왔기에 발룬티어들도 마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다.


결혼식을 위해 준비중인 무대, 아직 채색을 하기 전이다


마을의 아담한 잔디광장 한쪽에는 몇 주 전부터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축제가 열리는 줄 알았는데 곧 있을 결혼식을 위한 것이라기에 나는 새삼 놀라웠다. 결혼식을 얼마나 성대하게 하기에 무대까지 짓는 걸까.


한국에서 나는 3년 가까이 주말 시간을 이용해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신부의 드레스를 잡아주는 드레스 이모 역할과 사회자 옆에서 조명과 음악을 틀며 결혼식을 진행하는 일 등을 했었는데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경험한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적지 않게 실망스러웠다.


고작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모든 예식을 해치우고(표현이 과격하지만 일반 예식장은 공장처럼 돌아갔다) 사회나 주례마저 2010년대였던 당시에는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가들을 섭외했기에 11시, 12시, 1시의 주례 선생님이 모두 같은 사람이었고, 매식마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주례사를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스라엘의 마을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점점 궁금해져갔다.  


잔디 광장에 준비된 결혼식 장소


드디어 8월이 찾아왔고 고대하던 결혼식 날이 되었다. 잔디 광장에는 다이닝룸 주방 직원들과 마을 아주머니들께서 며칠 내내 준비한 맛깔난 음식들이 놓여있었고, 하얀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과 야외용 의자들이 예쁘게 세팅되어 있었다. 해지기 전의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온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신랑 신부를 기다렸고 그날의 주인공이었던 베토(에콰도르 출신)와 얌(이스라엘 스데보케르 출신)은 모습을 나타냈다.


신랑신부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


베토(Beto)는 본래 에콰도르 출신으로 나와 같은 발룬티어 자격으로 스데보케르에 왔다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들었다.


입장하는 신랑 신부


베토와 얌은 새하얀 정장과 나풀거리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따스하고 기분 좋은 바람을 가르며 잔디 광장으로 걸어왔다. 그들의 양옆으로 마을 주민들과 그들의 가족 및 친구들이 환호하고 손뼉을 치며 신랑신부를 향해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주었다. 아담하고 작은 무대에 올라선 둘은 결혼을 서약하고 주례자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자 신랑인 베토가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 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 찌로다"라고 성경 말씀을 암송한 후 호일로 감싼 술잔을 밟아 깨트렸다. 이와 같은 행동은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결혼식 날에도 과거 선조들의 힘겨웠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얌과 베토 (이미지 출처: 베토의 페이스북)


술잔이 깨지고 베토와 얌은 키스를 나누었고 곧 축하의 박수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결혼 축제가 시작되었다.


베토에게 전한 축의금 봉투
(좌) 루시와 함께, (우) 신랑 베토와 함께


가지런히 세팅된 테이블 중 한자리에 발룬티어들이 모여 앉았다. 평소 발룬티어들과 친근하게 지냈던 베토를 위해 우리는 조금씩 돈을 모아 축의금을 마련했고, 각국의 언어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적은 봉투에 돈을 담아 신랑에게 전달했다.


한 자리에 모여 앉은 발룬티어들


우리는 광장에 준비된 각양각색의 맛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곧 무대에서 다양한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무대에서는 얌의 친구들이 준비한 댄스곡에 맞추어 안무를 하였으며, 마을의 어린이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합창하기도 했다. 또 베토의 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하고, 베토와 얌이 하객을 상대로 준비한 커플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마을 사람들


결혼 축하 의미로 하늘로 날려보내는 풍선들


결혼식 내내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캄캄한 밤이 찾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하늘로 색색의 풍선을 날려 보내며 둘의 앞날을 축복하는 세레머니를 진행했다. 당시 스물두 살의 나에게 결혼은 먼 미래의 얘기였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결혼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은 늦은 밤까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고 그렇게 스데보케르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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