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의 탄생 2
# 선화공주는 과연 조연일까?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왜 하나같이 집을 떠나는 걸까? 주어진 길을 거부하는 자만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란 자아를 찾는 여정이다. 부모의 법(기존의 질서)과 자식의 길(신 질서)이 대립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는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서동설화에 등장하는 선화공주도 마찬가지다. <서동요>로 인해 모함에 빠진 선화공주는 귀양길에 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서동이 나타나자 그를 따라 백제로 향한다. 아버지인 진평왕을 거역한 것이다. 이쯤 되면 궁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떠난 격이다. ‘집에서 쫓겨난 딸’의 이야기는 세계의 민담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동설화의 선화공주와 비교할만한 이야기가 제주도에 전해지는 <삼공본풀이>다. <삼공본풀이>는 제주도에서 큰 굿이 열리면 구연되는 무속신화다. 이야기의 주인공 ‘감은장애기’는 인간의 운명 혹은 팔자를 관장하는 신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감은장애기에게 복을 기원한다. 선화공주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을 터이니 이 글에서는 감은장애기가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옛날에 강이영성이수불과 홍문소천구애궁전이 살았다. 이름이 길어도 어쩔 수 없다. 무속에는 이상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남자인 강이영성은 윗마을에 사는 살고 여자인 홍문소천은 아랫마을에 살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거지라는 점이다. 둘은 상대 마을의 형편이 좋다는 말을 듣고 상대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만난다. 그 자리에서 눈이 맞아 결혼한다. 두 거지가 첫 딸을 낳자 사람들이 은그릇에 밥을 주어서 ‘은장애기’라 불렀다. 둘째 딸을 낳자 놋그릇에 밥을 주어 ‘놋장애기’라 했다. 셋째 딸을 낳자 나무바가지에 밥을 주어 ‘감은장애기’라 했다.
감은장애기가 태어나자 가난하던 부부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종을 두고 살 정도였다. 하루는 세 딸을 불러서 부부가 문답 놀이를 했다. ‘너희들이 잘 먹고사는 게 누구 덕이냐?’ 첫째 은장애기는 ‘이게 다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입니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부모가 흡족해했다. 둘째 놋장애기도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런데 셋째 감은장애기는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도 있으나, 제 덕도 있습니다.’라고 맹랑한 대답을 했다. 부모가 괘씸해서 감은장애기를 밖으로 쫓아버렸다.
홧김에 막내딸을 쫓아냈으나 부모는 곧 걱정되었다. 그래서 두 딸에게 동생을 다시 불러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평소 사랑받는 막내를 시기하던 언니들은 거짓말을 해서 오히려 막내를 멀리 쫓아버렸다. 감은장애기가 집을 떠나자 가족들에게 불행이 시작됐다. 두 언니는 각각 지네와 버섯으로 변하고, 부모는 눈이 멀었다. 그리고 다시 거지가 됐다.
한편 집에서 쫓겨난 감은장애기는 깊은 산속을 가다가 호호백발 할머니 집에 찾아들었다. 그곳에서 ‘마를 캐는 삼 형제’를 만났는데 셋째 마퉁이만 감은장애기를 받아줬다. 다음날 마퉁이가 마를 캐는 곳에 가니 금덩이가 널려 있었다. 감은장애기는 금덩이를 팔아서 셋째 마퉁이와 부자가 되었다.
천하 거부로 살게 된 감은장애기는 거지 잔치를 베풀어 부모와 상봉한다. 그리고 익숙한 <심청전>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설운 어머니 설운 아버지, 감은장애기가 여기 있소. 이 술 한 잔 받으시고 어서어서 눈을 뜨오.’
제주도 민속설화 <감은장애기> 이야기의 유형은 ‘내 복에 산다’ 이야기와 ‘쫓겨난 딸’ 이야기의 형태를 갖는다. 이 민담 유형은 부친에게 ‘내 복에 산다’고 말해서 쫓겨 난 막내딸이 가난한 남자를 만난 후, 자신의 지혜로 부자가 되어 가난해진 부친과 재회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티브는 자아와 세계의 불화에서 시작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시대에서 주인공은 ‘왜’라는 물음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서동설화는 ‘서동은 어떻게 무왕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왜 무왕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서동설화의 숨겨진 주인공 선화공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내 복에 산다
‘내 복에 산다’는 이야기 모티브는 『삼국유사』의 <선화공주와 무왕>, 『삼국사기』의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에서 나타나며, 몽골의 <조홍마>, 일본의 <숯구이 고고로> 등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다. 딸의 지혜로 ‘복’을 획득하는 과정이 지역별 특색에 따라, 인도에서 불교적으로, 몽골에서는 말을 다루는 기술로, 한국에서는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전설로 바뀌어 전승되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는 다른 나라 공주의 도움으로 영웅이 된 사내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낙랑왕은 고구려의 호동왕자를 만난 뒤,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와 결혼시킨다. 낙랑에는 적의 침입을 알려주는 ‘자명고’가 있었다. 호동은 낙랑공주에게 이 자명고를 찢어야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낙랑공주는 호동의 말을 따르고 자명고만 믿었던 낙랑국왕은 낙심하여 딸을 죽이고 고구려에 항복한다.
서동설화의 선화공주는 사랑도 얻고 남편도 출세시키는 해피엔딩이다. 그 차이가 뭘까? 첫째, 낙랑공주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삼국사기에는 낙랑국왕 최리의 딸이라는 기록만 남아 있다.) 그 이유는 서사적 관점에서 공주라는 신분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둘째, 낙랑공주가 한 일의 정당성 문제다. 아무리 남편 나라를 위한 일이지만 결국 불충과 불효를 했다.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은 어쩌면 당연한 일. 호동왕자도 낙랑 정벌 후 모함에 빠져 죽게 된다.
특히 <온달전>의 평강공주와 <무왕조>의 선화공주는 역사적 인물을 등장인물로 설정하여 전설로 전승된다. 이 이야기들은 가부장권에 저항하는 여성 향유층의 보상심리가 만들어 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서사 전개과정이 집에서 쫓겨난 주인공의 성인식이며, 이야기의 초점이 ‘진흙처럼 쌓인 금’과 같이 부를 상징하는 물질의 획득에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집에서 쫓겨난 딸’ 이야기는 재물을 가져오는 능력을 가진 샤먼(딸)의 상대자로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존재인 숯구이 총각의 결합에 주목한다. 즉, 고대 부족 국가의 분리 단계에서 부친(기존 세력)이 재결합 과정에서 열세로 바뀌고 주인공과 적대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면서 능력과 의지를 지닌 딸(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딸은 약한 존재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복이 있고,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운명적이라는 사고를 보여준다.
# 선화, 서동을 나르샤
서동설화를 선화공주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집에서 쫓겨난 딸의 상대가 ‘숯구이 총각’이 아닌 ‘마퉁이’로 설정된 것은 익산의 <서동설화>와 제주도의 <삼공본풀이> 둘 뿐이다. 이야기 원형을 유지하는 무가의 특징이 감안하면 이 유사성이 의미하는 것이 해석의 여지가 크다. 샤먼과 같은 통찰력을 가진 여성과 능력이 발휘되기 전의 남성의 결합, 그리고 부친(지배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내용이 고조선 준왕의 남천, 혹은 무왕의 익산 천도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마한은 중국의 사서에서도 무속의 전통이 강한 부족으로 기록된다. 마한인들은 귀신을 섬기고, 춤과 노래를 즐겨 불렀으며, 집단무를 추는 등 무속적 전통이 강했다. 서동설화에서 선화공주는 단순한 조력자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흙 속에 묻힌 금 같은 서동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서동을 만나서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결혼하였으며, 흙덩이와 같이 취급했던 오금산의 금의 존재를 알아보았고, 사자암에 있던 지명법사의 능력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신의 뜻을 전하는 무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서동이 왕위에 오른 후에 연못에서 솟은 미륵 삼존이 그녀 앞에 나타난 것도 어쩌면 선화 왕비야 말로 자신들이 나타난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왕을 진정한 ‘대왕’으로 만든 것은 선화공주다. 그녀는 마퉁이에 불과한 시골 젊은이에게 귀족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던져서 ‘전륜성왕’으로 끌어올렸다. 부모의 눈을 뜨게 한 감은쟁애기처럼 선화공주는 서동의 눈을 뜨게 했고, 나아가 백제인의 눈을 뜨게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룡지의 용이었던 서동을 하늘로 오르게 한 여의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