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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Oct 30. 2020

미륵탑과 왕궁탑 이야기

무왕의 탄생 3

# 남매 탑 쌓기 이야기     

신화의 유사성은 국경을 넘는다. 태생이 왕의 딸인지, 거지의 딸인지가 다를 뿐, 익산의 선화공주와 제주도 감은장애기의 스토리는 닮아있다. 일부 신화학자들은 기독교의 주요 스토리가 고대 신화에서 차용된 것으로 본다. ‘노아의 홍수’가 이미 전승되고 있는 세계의 홍수 신화를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이야기는 의미를 담으며 새롭게 창작되고 전승된다. 


‘집에서 쫓겨난 딸’ 모티브도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의 일종이다. 쫓겨난 딸은 대부분 셋째다. 노래에서 ‘최진사댁 셋째 딸’이 주인공이 된 것도 이런 연원이 있나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제일 예쁘고 참한 셋째 딸이 친부모에게 쫓겨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 구조상 주인공은 집을 나서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여자는 집을 나서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여자가 가문에서 ‘쫓겨나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최초로 쫓겨난 딸은 ‘바리데기’다. 바리데기는 병든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멀고 먼 서천에 가서 생명수를 구해온다. 막내딸이라고 버려진 바리데기가 고귀한 시혜자로 변하는 전복의 상상력에 민중들은 열광했다. 여성, 혹은 여신의 신화가 남성 중심의 영웅신화로 변화된 것은 고대 국가 체계가 확립되면서부터다. 권력이동에 따른 성별 교체가 이야기로 남은 것이 ‘남매탑 쌓기’ 전설이다.     


익산의 ‘남매 탑 쌓기’ 이야기는 왕궁면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남매가 탑 쌓기 내기를 했는데 누이는 미륵탑을 오빠(남동생)는 왕궁탑을 쌓기로 했다. 그냥 심심풀이 내기가 아니다. 내기에 진 사람은 잔혹한 최후를 각오해야 한다. 왜 남매끼리 하드코어 내기를 했는가는 묻지 말자. 어디까지나 이야기다. ‘남매 탑 쌓기 내기’는 결말에 따라 몇 가지 이본이 내려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미륵탑을 쌓는 누이가 꼼꼼히 쌓느라 시간 안에 못 쌓은 반면 오빠(남동생)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왕궁탑을 건성건성 쌓아서 이겼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제삼자가 등장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옛날에 한 노인이 남매를 두었는데 관상쟁이가 아들과 딸 중에 하나만 데리고 살아야 불길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딸에게는 미륵탑을, 아들은 왕궁탑을 쌓게 하여 내기에 지면 집에서 내쫓기로 했다. 왜 노인은 딸 대신 아들을 선택했을까? 아들이 대를 잇는 적장자이기 때문이다. 딸은 아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희생양이 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필자가 왕궁면 탑리마을에서 채록한 이야기다.

 “미륵탑은 누나고, 왕궁탑은 동생이고 근디 인자 쌓을 때 먼저 쌓아야 만이 안 죽고, 늦게 쌓은 사람이 죽는다. 그런 전설을 할아버님들이 말씀 허시는데… 여자가 미륵탑이 크게, 치마폭에다 돌을 쌓아서 돌이 크고, 남자는 저고리 옷깃에다 나르다 보니까 늦고, 그 어떻게보믄 천천히 허게 끄름 부모가 누나 한티는 머라도 갖다 주면서 쉬쉬갔고 혀라 그래 갔고 아들을 살리려고 했어요.” (2012년 당시 63세 김정배 씨)     


<한국구비문학대계>에 기술된 정병갑(동고도리)씨의 구술도 위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흥미로운 것은 탑 쌓기 내기 이야기가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두루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녀는 탑 쌓기(혹은 성벽 쌓기) 내기를 하여 그 결과에 따라 벌칙을 받는데 심지어 죽는다. 물론 이 내기는 대부분 남자가 이기게 된다. 딸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처음부터 질수 밖에없 는 또는 쫓겨날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왜 전승되었을까? 그것은 이야기를 듣는 민중들이 능력은 출중하나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딸, 혹은 아기장수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왜 딸(여성)에게 미륵탑을 쌓게 했는가?에 의문이 생겼다. 단순히 난해한 미션을 수행하게 하려면 딸에게 성벽을 쌓게 해도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미륵사 건립을 청원한 사람이 선화공주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흥미로운 점은 ‘남매 탑 쌓기’ 이야기가 미륵탑이 있는 금마면보다 왕궁면에서 더 많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능력이 더 출중했던 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금마면의 주변부였던 왕궁면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한 것일까?

       

# 부활의 상징인 미륵사지 사리장엄     

여신이 남신으로 변화되면서 기존의 여신의 권능도 남신의 것으로 변화한다. 농경지대에서 풍요의 상징이었던 여신은 남신의 표상으로 교체된다. 농경지대에서 남신은 용으로 상징된다. 용은 비를 부린다는 상상의 동물로 여의주를 얻으면 승천을 하고 비를 내릴 수 있다. 왕의 위엄이 옥새의 사용으로 확인되듯이 용의 권능은 여의주로 표상된다. 여의주가 없으면 용은 그저 큰 뱀 즉 이무기에 불과하다. 이무기는 위협이 될 수 있는 불안한 존재다. 마치 아기장수처럼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서동신화를 미륵사 창건에 따른 백제 르네상스 기획의 하나로 생각한다. 국가 부흥 기획의 배경으로 ‘미륵삼존불의 현시’를 통한 신의 계시가 명분으로 작용됐다. 이야기 구조상 무왕신화는 개인의 영웅신화가 아닌 미륵사 건설을 완성한 시점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즉 미륵사가 갖는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서동신화가 차용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미륵사는 무왕 자체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사리’의 모티브는 재생과 부활을 상징한다. <콩쥐팥쥐> 이야기는 신이 이승의 일에 관여한다. 나무로 만든 호미가 부러져서 울고 있는 콩쥐 앞에 검은 소가 나타난다. 검은 소는 죽은 콩쥐 엄마의 현신이다. 검은 소는 자갈밭을 대신 갈아주고 맛있는 음식도 속에서 꺼내 준다.(아마도 소의 되새김질의 습성을 은유한 것) 그리고 콩쥐가 감사(선비)와 결혼하게 도와준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팥쥐가 연못에 빠트려 콩쥐를 죽이자. 콩쥐가 죽어 연못의 꽃으로 핀다. 팥쥐는 꽃이 콩쥐의 환생인 줄 알아채고 아궁이에 넣어서 태운다. 그러나 이 꽃은 불에 탄 후에 구슬로 변화한다. 뼈는 곧 구슬이며, 사리다. 부처의 재생과 부활의 상징하는 사리를 모신 것이 사리장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콩쥐팥쥐 이야기는 인과응보로 마무리된다. 콩쥐는 구슬로 환생하여 팥쥐를 심판하고 마침내 남편인 감사와 재회한다. 콩쥐가 연꽃으로 변한 것이나, 구슬로 변한 것 불교적 상상력에 기인한다. 고승이 열반할 때 펼쳐진 다비식은 콩쥐처럼 변화하기를 바라는 불교의 가장 엄숙한 의식이다, 사리는 물리적인 뼈가 아니라 신화적 상징의 존재가 된다. 미륵사탑에 모신 사리장엄이 곧 신화를 완성하게 하는 화룡정점인 셈이다. 무왕은 사리장엄을 통해 국경과 국경,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위대한 신화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백제를 상징하는 용(무왕)이 여의주(사리장엄)를 얻어 승천한 것이다.     


미륵사 서탑에서 발굴된 사리장엄이 백제의 최상급 미학을 보여준 것은 단순히 종교적 의미만은 아니다. 수부(首府)라는 명문이 찍힌 미륵사의 기와가 용의 비늘로 비유한다면 미륵사 탑의 심주석에 모신 부처의 사리장엄은 여의주에 해당한다. 백제 부흥을 상징하는 무왕이라는 용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사리장엄이라는 여의주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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