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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재 Jul 03. 2020

바람개비 마을의 풍장 소리

성포 별신굿


# 어둠이 내리면 신명의 바람이 분다 

금강하구에 면한 성당포구의 정월 초하루. 추위에 꽁꽁 언 강은 거대한 용처럼 마을을 휘감는다. 짧은 하루 해가 저물면 어둠이 몰려온다. 어둠은 금강석처럼 꽁꽁 언 강의 두터운 얼음장 밑의 강물 소리도 얼릴 듯이 밀려와 마을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어둠이 내리면 신명의 바람이 분다. 이윽고 마을 어귀부터 꽹과리 소리가 이끄는 풍장 소리가 어둠을 뚫고 마을에 울려 퍼진다.


풍장은 마을의 각 집을 돌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은다. 마을 앞 당집산으로 오르려는 것이다. 횃불을 든 건장한 뱃사람 사이에 용기를 든 사람들의 상기된 모습이 언뜻 보인다. 마을에 남은 노인과 어린애들은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횃불의 긴 행렬이 승천하는 용처럼 보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산 위 순풍당으로 오르는 횃불의 행렬이 신명 나는 풍물소리에 따라 용솟음치며 흔들렸다.

이윽고 순풍당에서 별신굿이 시작될 것이다. 정월 초하루의 어둠은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지우고 어둠을 몰고 온 바람은 이승과 저승의 시간을 지운다. 성당포 당집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얼음강은 마을을 여의주처럼 물고 있는 백룡처럼 위엄이 있다. 성당포 굿은 풍물소리로 시작한다. 신명이 신명을 부른다. 참여자들의 어깨와 발걸음이 ‘신명’으로 들썩거릴 때 굿은 시작하는 것이다.     




바람을 부르는 징 소리가 울리면 북소리가 구름처럼 몰려온다. 구름의 틈으로 꽹과리 소리가 번개처럼 내 지르면 오래 참았다가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장구 소리가 굿판을 적신다. 악기와 악기가 서로를 부르고 어루만지며 신명을 돋운다. 꽹과리 소리가 숨 가쁠수록 북과 장구 소리는 엇갈리다 마주치고 또 도망가고 쫓아간다. 소리와 소리가 뛰어다닌다. 

성포마을의 별신굿은 마을의 동제가 가진 전통을 고대부터 이어온 연희의 형태로 표현하는 원시 종합예술이다. 원래 별신(別神)굿의 별신은 ‘특별히 모시는 신’의 제사라는 뜻이다. ‘들’의 고어인 ‘벌’에서 유래하여 ‘벌신’이라고도 하고 ‘배’의 신에서 유래한 ‘밸신굿’이라고도 한다. 고대인들의 들과 물의 정령에 대한 제사가 별신굿의 정체성인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마마(두창, 천연두)가 유행하면서 별신을 마마신으로 보아 잡귀의 심술을 달래는 비보의 의미가 추가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 신심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한다    

별신제를 주관하는 당주는 ‘밑집’이라 불렀다. 밑집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 제사를 주관하는 소명을 부여받았기에 오로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데 힘을 썼다. 밑집으로 선출되면 합방을 하지 않고 젓갈이 든 음식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을 쳤다. 밑집은 정월 추위가 매서워도 마을 앞 큰 샘에서 매일 목욕재계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금기와 극기의 시간 끝에 열리는 별신제는 해방의 시간이다.     

  



성포 사람들은 새해 전부터 당산나무 청소를 한다. 청소 후엔 고운 황토를 바닥에 뿌리고 새끼를 꼬아 금줄을 쳤다. 당산 청소가 끝나면 굿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했다. 제상을 마련할 때는 제기 등 모든 것을 일체 새로 구입해서 준비했고 제물을 바칠 때는 입에 종이를 물어 부정을 금했다. 별신제의 준비는 걸립 풍장으로 시작한다. 걸립패가 풍장을 치며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굿을 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부자는 넉넉하게 부족한 사람은 형편껏 정성을 보였다. 이것을 ‘신심(信心)하러 나선다.’고 한다. 별신제는 서로 ‘믿는 마음(신심)’에서 준비한다.      

한 해의 시작은 부정 탄 지난 것들의 정리에서 시작하는 것. 별신굿이 ‘부정굿’부터 시작하는 연유이다. 저마다 마음속 그늘을 씻어내며 마을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진다.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금강은 노하면 뱃사람들의 가족들을 데려갔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 아닐까? 종교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시작했으나 현실을 긍정하는 오래된 삶의 철학 인지도 모른다.  

      



상당굿을 할 때면 대나무로 깃대를 세우는데 깃대 위 쪽에는 방울을 단다. 제사가 잘 진행하려면 이 방울이 울려야 한다. 그래야 제사가 잘 지낸다는 것이다. 대나무 깃대는 마한 시대부터 내려온 솟대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운선의 크고 작은 깃발과 마을기가 신명을 받아 흔들리면 유식 제사의 순서에 따라 강신에서 음복의 의례가 진행된 후에는 마을 주민들의 소지를 올려 공동체의 무병 발복을 기원했다. 하당굿은 당산나무 아래에서 벌어진다. 일종의 여흥 굿이다. 별신제를 위해 기부해준 사람과 마을 전체의 평화를 위해 벌어진다.      

# 함지 가득 별빛 물고기를 담아

제석굿은 별신굿의 신명이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 시작한다. 제석신은 비·바람을 다스리는 신인데 수미산 정상에서 불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제석천은 ‘인드라망’이라는 투명하고 거대한 그물을 흔들어 아수라(어둠)를 물리치고 불법을 수호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임을 상징하는 인드라망처럼 제석굿은 사소함과 소소함으로 불러오는 인간의 갈등을 어루만지는 한판 굿으로 펼쳐진다.   

    



거리굿은 별신굿의 마지막 제차다. 별신굿은 잡귀와 잡신을 불러 모아 달래고 보내는 연극적 구성으로 이뤄졌다. 별신굿이 시작할 무렵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에 잡귀를 잡아두었다가 불태움으로써 마음속의 갈등과 번뇌도 함께 태운다. 헛되고 무망한 과거의 기억을 정월을 맞아 청소시키는 것.      

뱃사람들이 오폭기를 달고 먼바다로 떠날 때, 성포마을의 노인들은 당산에 모여 앉아 황포 돛대가 가물거릴 때까지 보곤 했다. 바다에서 밤을 꼬박 새운 배들이 아침 선창에 풀어낸 물고기들은 별빛을 먹고 자랐는지 비늘이 번쩍거렸다. 고깃배가 성포 나루터에 도착하면 신이 난 아이들과 아낙들은 제각기 광주리를 들고 나왔다. 


아이는 작은 함지에 아낙은 큰 광주리에 지아비가 잡아온 별빛 물고기를 그득그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여 ‘신명 난다’는 말은 일용할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가장의 발걸음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별신굿의 무당이 늘어놓는 사설이 바다와 들에 풀어놓은 감춰진 신명의 발걸음을 불러 모은다.  


* 이 원고는 2018년 익산문화관광재단에서 펴낸 『강을 거닐다』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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