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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30. 2020

새벽 5시의 아메리카노

아이 셋이라서 가능했던 새벽 기상

새벽 5시. 드르륵 드르륵.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황급히 손을 더듬어 알람을 껐다. 아침이면 포근한 이불은 달콤한 유혹이 된다.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를 말하며 이불 속을 파고들자면 결국 다시 잠들 일이 뻔하다. 결국 핸드폰을 쥐고 일어나 옹기종기 제각각의 모습으로 잠든 아이 셋과 남편을 뒤로한 채 슬며시 방을 빠져나온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후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인다. 보글보글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가 참 좋다. 압력밥솥에서 나는 칙칙- 소리, 커피 물 끓는 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 중 하나다. 사람 사는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다. 연하게 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물어본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도는 따뜻한 커피의 맛이 좋다. 그래, 이 맛이지. 하루 중 눈 뜨자마자 마시는 이 따뜻한 커피의 맛은 어떠한 맛도 비할데가 없다.




나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7시까지 매일 2시간 남짓의 나만의 시간이 확보된다. 내가 처음 새벽 기상을 시작했던 건 2019년 3월 어느 봄날이었다. 그때 당시 셋째를 출산 한지 100일을 좀 넘긴 시점이었다. 애가 셋인데 새벽 기상을 한다니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대단한 건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한 것이었다. 나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간 아이 셋 집콕 육아. 내 시간이 하나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숨막힘이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 본능마저 무시된채로 하루 하루를 어찌 살아내야 하는 그 시기는 나에게 극한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은 세계 곳곳의 위험한 지역에서 생존해 나가는 모습을 담은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영국의 특수요원 출신 베어 그릴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사막, 정글, 계곡, 눈 덮인 설원 등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오지를 그는 일부러 찾아간다. 그는 생존에 필요한 선택과 결정을 시시때때로 한다. 그리고 방향을 정해 쉼 없이 움직이면서 방향성이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 다다른 나에게도 방향성 점검이 필요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나에게는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내 개인 시간을 더이상 유보할 수 없었다. 이건 생존과도, 나의 존재와도 관련된 문제로 다가왔다.



막내를 출산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딱히 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들을 재우다가 잠드는 날도 많아서 그마저도 들쑥날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새벽 기상이다. 결혼 전 주말이면 12시간씩 몰아서 자고 워낙 아침잠도 많아서 학창시절 엄마의 물뿌림도 맞아봤던 나다. 고등학생 때는 하교 후 가방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잠시 앉아 있다가 잠든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약골에 잠도 많은 나였다. 그런 나에게 새벽기상은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한 도전이나 다름 없었다.






작심삼일은 반복됐다. 며칠 일어나고, 며칠 못 일어나고 그러기를 한두달 반복했다. 실행력이 안 따라주는 내 몸뚱이가 참 한심스러웠다. 그러다 지인과 대화 중 나의 실패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새벽 기상을 하는 지인은 밤 9-10시면 잠 든다고 했다. 나는 새벽 기상을 위해서 잠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과 똑같이 12시에 잠들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가뜩이나 잠이 많은 내가 잠을 더 줄이니 지속할 수가 없었던 건 당연하다.  



새벽 기상을 하려면 일찍 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것 같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잠을 줄여 일어난다면 낮 시간에 매우 예민해진 나를 아이들이 견뎌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최소 7-8시간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잤다. 10시쯤 자서 5시에 일어나면 7시간을 내리 푹 잘 수 있다. 이렇게 자도 피곤한 날에는 짧게 낮잠을 자주곤 한다. 그리고 매일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을 좀 내려놓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새벽 기상을 하고, 주말에는 10시간을 넘게 푹 잔다. 다이어트도 요요 없이 지속하려면 나에게 보상을 주는 날이 꼭 필요하다. 그날만큼은 참았던 것들에 대한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새벽 기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한 주간 수고했다고 나를 토닥이는 보상의 날이 필요하다. 그날만큼은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방 안에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만끽하는 거다.




새벽에 일어나면 주로 책을 읽는다. 책 원고를 준비할 때는 글을 매일 썼고, 디지털 드로잉에 빠졌을 때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생각해보니 그때마다의 관심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핵심은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그래야 강력하고도 달콤한 침대의 유혹을 떨쳐내고 일어날 수 있다. 잠들기 전에 내일은 일어나서 무슨 일을 할지 머릿 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넣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복적으로 새벽 기상을 성공하다 보면 자존감도 높아진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간단한 방법은 작은 성취를 반복적으로 느끼면 된다는 것이다. 못 할 것 같던 새벽 기상을 하루, 이틀 해내는 날이 많아지니 내 자존감도 점차 단단해졌다. 이것도 할 수 있는데 다른 것도 못할까 싶은 도전 의식이 생긴다. 엄마일수록 이런 작은 성취 경험들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새벽 기상이든, 아이와 관련된 엄마표 놀이든, 맛있는 집밥 만들기든 말이다. 하나의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취 경험은 자신을 잃어 버린 엄마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준다.




아이 셋 엄마라서 새벽 기상을 결심하고 지속할 수 있었다. 절박한 상황이 간절한 마음을 만들었고, 강력한 실행 동기가 되어주었다. 의지가 약해서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절박하지 않아서일 뿐이다. 코로나로 집콕 육아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엄마들이 충분히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타인의 지배 아래 놓인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유한하고 고독하며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는 우리의 본래적인 세계,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라고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자신만의 시간을 챙겨야 하는 이유다. 육아와 집안일에 얽매인 일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고요한 나만의 시간이 엄마들에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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