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씨가 참 싫었다. 유치한 별명을 짓길 즐기는 초딩 시절. 특이한 "함"씨라는 성을 가진 나의 별명은 성과 관련된 것들이 주로였다. <함 사세요>, <함무라비> 등등.
"엄마 나는 왜 함씨인거야? 나는 함씨가 싫어.!! 친구들이 놀린다고!"
엄마가 어떻게 대답을 해주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셨겠지만 말이다. 어렸을 적에는 성씨가 놀림의 대상이었다면 조금 커서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한진아씨요?"
"아니요. "한"이 아니라 "함"이요."
"함? 함이요?"
"네.. "하"에 "ㅁ" 받침, "함"진아요."
내 성이 특이한건 알겠지만 어딜가서 이름을 구두로 말해야 할때면 꼭 되묻곤 했다. 이렇게라도 재차 확인을 한다면 다행인데 자기 마음대로 "한진아" 또는 "한지나"라고 써버리는 경우는 허다했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틀린 성씨를 써도 맞다고 넘어가 버린다.
이런 나의 특별한 함씨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어른이 되서부터였다. 나는 규모가 꽤 큰 교회에 다니는데 매달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 헌금 봉투를 찾는 곳은 성씨의 자음으로 찾게 되어 있는데 워낙 봉투가 많기 때문에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럴 때 나의 특이한 함씨는 빛을 발했다. 생각해보니 특이한 성에 비해 평범한 "진아"라는 이름은 반에 꼭 1~2명씩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름이 같은데 성까지 같다면 이름 뒤에 A, B를 붙여 불렀다. 고유의 이름이 아닌 알파벳이나 숫자가 붙은 이름은 너무 인간미가 없게 느껴졌다. "진아"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를 한 반에 많게는 3명도 만나보았다. 그럴 때에도 내 이름에는 기호가 붙지 않았다. 나의 특별한 성씨 덕분에 말이다.
이뿐이랴. 블로그를 처음 개설했을 때 닉네임을 고민했다. 함콩. 사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함씨 성에 무엇을 붙여도 유니크하고, 콩순이란 단어는 엄마가 어렸을 적 나와 내 동생을 부르는 애칭이기도 했다. 나의 특별한 "함"과 콩순이의 "콩"이 합쳐진 함콩. 나는 지금도 필명인 함콩이 참 좋다. 그렇게 싫어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특별한 나의 성.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이 나는 "함"씨다. 변한 건 내 마음, 나의 시선이었다. 모든 것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존재한다. 마냥 좋은 것만은 없고, 마냥 나쁜 것만은 없는 것이다. 상황은 그렇게 중립적이지만 사람 마음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걸 또 뒤집어 생각해보면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쁜 점을 보다보면 상황은 더욱 나쁘게 보일 것이고, 좋은 점을 보려 의식적으로 노력할수록 좋은 점이 더 부각될 것이다. 볼록한 돋보기는 햇빛을 모아준다. 한 곳으로 모인 햇빛은 종이를 태운다. 햇빛은 내 마음과도 같다. 어떠한 마음을 모으느냐에 따라 내 시선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게 된다. 얼마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는 참 중요한 것 같다. 이 태도는 긍정적인 마음을 모으는 매일의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