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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걷는 것이 모든 일상이 되었다


 PCT에는 각자의 고유한 Trail name이 있다. 트레일을 걷는 기간 동안 불려지는 이름인데 자신이 직접 지을 수도 있고, 남들이 지어줄 수도 있다. 나는 지독한 길친데 친구들은 항상 나를 보고 길치가 어떻게 저렇게 싸돌아 다닐 수 있는지 신기해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길치와 아주 잘 어울리는 트레일 네임이 생겼다. PCT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가 당차게 걸어갔던 뱡향은 멕시코의 국경 방향이었다. 300미터 정도를 걸었을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 Hey!!!! It`s this way!!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다. 아놔.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돌아오니 웃으며 묻는다. 


- 너 멕시코 장벽 넘으려고?(웃음)


그들은 출발지점에 막 도착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하이커로 보이는 누군가가 장벽을 넘으러 가는 것 같았다며 불렀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며 한바탕 웃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걷는(것 같았는)데 10분쯤 지났을까 다시 또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 Hey!!! Its not that way! Its this way!!


이번에는 하이커들을 픽업해주고 마을로 돌아가던 현지인 아저씨가 소리쳤다. 길을 다시 잃을 뻔했다. 아놔. 뒤에서 아까 사진을 찍던 하이커 무리가 웃으며 말을 건다.


- 너 길을 자주 잃는구나

- 응. 나 좀 심한 길치야(웃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PCT에 도전하던 사람들은 손수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았다. 길을 걷다가도 한참을 멈춰 서서 손가락을 짚어가며 길을 찾았다. 지금은 PCT에 관한 앱이 여럿 나와있다. 그중 '것훅(Guthook)'이라는 앱과 하프 마일(Half mile)이라는 앱이 있다. 것훅은 유로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앱이다. 하프 마일은 무료에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만 제시해주는 앱이다. PCT 초반의 사막 구간은 길이 잘 나있기 때문에 굳이 앱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무런 앱도 깔지 않고 걸었다. 길치의 최대 문제점은 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앞으로 간다는 점이다. 무슨 자신감인지 하여간 쓸데없는 근자감 때문에 매번 길을 잃고 또 잃는다.


그렇게 나는 PCT를 시작하자마자 1시간 내에 길을 두 번이나 잃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미국 하이커들이 내게 트레일 네임이 있냐고 물었다. 


- 아니, 아직 없어. 

- 그럼 우리가 하나 지어줄게, 어때? 

- 그래. 뭔데? 

- This way(웃음)

- 하하하하하


그렇게 내 이름은 This way가 됐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하이커들과 트레일 네임을 소개할 때면 이름 안에 어떤 스토리가 들어있는지, 어쩌다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곤 한다. 홍콩에서 온 72살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Gps를 볼 줄 몰라 무조건 북쪽을 향해 걷는 할아버지였다. 때론 길을 잃었고, 어느샌가 멀리서 보면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던 할아버지다. 때문에 동료 하이커들이 crazy72라는 트레일 네임을 지어줬다. 그 밖에도 Fire ball, Monk, Spider bike, Moist 등이 있었다.







PCT의 첫 구간, 남캘리포니아의 사막은 황량했고 뜨거웠다. 18kg나 되는 가방의 무게는 어깨를 짓눌렀다. 처음 PCT를 걷는 대부분의 하이커들은 융통성 없이 과한 장비, 과한 음식을 챙기곤 한다. 3일 정도를 걷다 보면 필요한 게 뭔지, 필요 없는 게 뭔지 바로 알 수 있게 되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조리 버리거나 어딘가로 보내 놓아야 한다. 


첫날부터 나는 여유 있게 걸었다. 가방이 무겁기도 했고, 물을 몇 리터나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조금 걸어본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여유롭게 걷자고 생각했다. 다른 하이커들은 재빨리 앞서 나갔다. 나는 느긋하게 걷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커다란 바위 밑 그늘에 앉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트레일에서 먹는 첫 식사였다. 지나가는 이는 없었고, 사방이 고요했다. 새소리와 부글부글 라면 끓는 소리만 났다. 신라면 특유의 매운 냄새가 퍼졌다. 라면을 먹고 바위 그늘에 누우니 잠이 솔솔 왔다. 잠깐 자고 일어나려 했는데 3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5시였다. 망했다. 너무 많이 쉬었다. 짐을 빠르게 싸고 다시 걸었다. 해가 지고 있어 정오보다는 훨씬 선선했다.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열심히 3시간을 더 걸었다. 밤 8시가 되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져 그만 걷기로 했다. 주위는 온통 컴컴했다. 첩첩산중에 나 홀로 똑 떨어져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여. 그냥 아무 데나 텐트를 치고 자면 되는 건가? 위험하고 아니고를 따지기엔 몸이 너무 고단했다. 모르겠고 그냥 빨리 자고 싶어 텐트를 쳤다. 텐트 치는 법을 미리 연습해왔는데 잘 되질 않았다. 어두워서 뭐가 뭔지 보이지도 않았다. 겨우겨우 텐트를 완성했지만 밥을 먹을 힘도, 더러운 먼지를 씻어낼 힘도 없었다. 심지어 양치도 하지 않고 바로 누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당분간은 적응기간이 필요하리라. 적응하면 그래도 좀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야생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흘러갔다.


오전 5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5시에 눈을 떴지만 침낭 속에 꾸물거리느라 그 안에서 10분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깐 지퍼를 내리고 팔과 얼굴을 내밀어봤다. 아직은 적응되지 않은 차가운 새벽 공기가 텐트 안에 감돈다. 아직 일어날 시간은 아니구나, 침낭 지퍼를 닫고 머리와 팔을 다시 집어넣는다. 그렇게 20분을 꾸물거리다 30분이 돼서야 침낭 밖으로 기어 나온다. 알은 온몸에 배겨있다.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산행을 하니 발 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 근육을 움직일 때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날 양치를 하지 않았으니 찝찝하기 그지없다. 양치부터 하고 요리를 했다. 메뉴는 멕시칸 라이스였다.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텐트 안은 아직 춥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짐을 다시 싸야 하고, 다시 걸어야 한다.  






일상은 피시티를 시작한 이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텐트와 침낭을 집어넣고, 아침을 먹기 위해 가스와 버너를 꺼내 물을 데우고 라면을 끓인다. 때가 잔뜩 낀 손으로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어제저녁에 물을 얼마나 챙겼었는지, 다음 물을 뜰 수 있는 장소까지 몇 리터가 남았는지 계산한다. 그리고 짐을 주섬주섬 싼 후에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걷는 것이 모든 일상이 되었다.


하루 10시간을 걷고 나면 4-5리터의 물과 음식들을 포함한 가방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부서질 듯 아프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린다. 그러고 나서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면, 어떤 날은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쓴 후에 바로 잠이 든다. 어떤 날은 같이 걷는 친구들과 함께 캠프 파이어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옹기종기 모여 캄캄한 밤하늘 아래, 저녁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기도 한다. 더 이상 밤늦게 누군가와 카톡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Sns를 뒤적거리지 못한다.


걷다 보면 힘들 때가 정말 많지만 광활한 자연과 웅장히 버티고 서있는 산맥들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가만히 멈춰 서서 앞에 펼쳐진 대자연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자연 앞에 선 한없이 작은 존재의 연약함을 느낀다. 점점 이 길에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조그맣던 물집은 걸으면 걸을수록 커졌다. 순례길을 걸을 때도 물집이 여럿 잡혔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걸을 때마다 고통이 심해졌다. 같이 걷던 차이니스 아메리칸인 Spiderbike가 근육통이 너무 심해 못 걷겠다고 하자 나도 내 물집을 보여주며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나보고 당장 트레일에서 벗어나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물집이 커진 이후로 나는 운동화를 신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게 트레일에서 잠시 벗어나 물집이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트레일을 벗어나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나는 크록스를 신고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미쳤냐는 소리를 했다. 옛날에는 샌들을 신고도 하이킹을 했는데 크록스라고 안될게 뭐 있나. 발목이 걱정되긴 했지만 운동화 보단 훨씬 나았다. 덕분에 트레일 네임이 3개로 늘어났다. 누군가는 나를 크록스라 불렀으며 누군가는 디스 웨이, 누군가는 미스터 블리스터(물집)이라 불렀다. 






5일간의 산행이 끝나 마을로 내려왔을 때 트레일 엔젤에게 초대를 받았다. 길에서 스쳤던 여러 하이커들이 이미 도착해있었다. 엔젤 아주머니는 내 물집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소금물을 집어넣은 족욕기를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하이커들이 어그적 대며 걸었다. 대부분 근육통과 물집으로 트레일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엔젤 아주머니는 저녁으로 맥주와 햄버거 스테이크, 소세지를 해주었다. 우리는 밤새 왁자지껄 떠들었다. 꼬질꼬질한 하이커들끼리 모이니 할 말이 넘쳐났다.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됐고, 무엇을 하다 왔고, 이 길을 과연 다 걸을 수 있을지, 내일 오르막 길은 얼마나 있을지,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는지, 트레일에서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내 쿠바 이야기와 아프리카 이야기, 네팔과 캐나다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다. This way는 스토리가 참 많다며 자신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소개를 해주었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음 날 트레일로 출발해야 할 때가 오면 앱에 나와있는 오르막 그래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단순 걷는 여행인 줄만 알았던 피씨티는 걷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오르고 내리고 다시 또 오르고 내리고의 반복.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만 생각했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열망으로 꽉 차게 되었다.


피씨티를 시작한 지 3주 차, 다시 돌아온 트레일은 낮시간만 되면 죽을 만큼 뜨거워졌다. 내 몸을 태워버리려 작정한 듯 내리쬐는 태양은 내 숨통을 조여왔다. 텁텁해진 입 속에 이미 말라버린 침을 다시 한번 혀 끝으로 모아 꿀꺽 삼키고는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은 내 인내심을 시험했고 나는 오직 한 걸음에 집중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아까 마셨던 물이 잘못된 건지, 음식이 잘못된 건지 꾸역꾸역 안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올라왔고, 조금 더 걷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토를 했다. 


햇빛은 등 뒤로 뜨겁게 타올랐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은 고작 1리터였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는 3시간을 더 올라가야 했다. 토를 하고 난 후 두 손으로 트레킹 폴을 부여잡고 온 몸을 스틱에 의지했다. 앞 뒤로 지나가는 하이커들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토하고 나니 목이 더 타들어갔고 가지고 있는 물을 벌컥 반이나 마셔버렸다. 500ml로 3시간을 올라야 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쳐서 20분가량 앉아있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은 목구멍까지 태워버릴 것만 같았고 나는 오르막을 오르며 좌절했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4300km라는 긴 거리가 주는 압박감이 의지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6개월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멘탈을 조각내고 있었다. 나는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이 힘든 짓을 6개월 동안 한다고?', '이 개고생을 매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 생각이 간절히 났다. 가족과 친구들, 보고 싶은 사람들 생각이 더욱 눈물짓게 했다. 넓고 광활한 산맥 안에 혼자라고 생각하니 더 무서웠다.


3시간 동안 물을 아주 조금씩,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목을 축여가며 꾸역꾸역 길을 올랐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다가도 조금 후에는 다시 '아니,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 '아니야 할 수 없어....', '할 수 있어!', '아니...'라는 반복된 생각을 하며 물이 있는 곳까지 어떻게든 올랐다. 앞에 보이는 건 콸콸 쏟아지는 시냇물이 아닌 조그맣게 고여있는 웅덩이였다. 나뭇잎과 함께 이름 모를 곤충들이 떠다녔다.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당장 물을 떠서 정수필터를 사용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야말로 생명수였다. 그 앞에 주저앉아 걸어온 길을 멍하니 쳐다봤다. 나 뭐 하고 있니. 현타가 자주 왔다.


그동안 걸어온 길은 고작 600킬로였다. 이 정도에 멘탈이 부서지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라는 생각에 길을 걷는 내내 실패감이 나를 감쌌다. 몸은 다음 날이면 다시 회복됐지만 무너졌던 멘탈은 다시금 회복하기 어려웠다. 6개월이란 긴 시간과 4300km라는 긴 거리가 주는 중압감이 무겁게 짓눌렀다. 그 중압감을 떨쳐내야 했다. 멀리 있는 캐나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루의 목표지점과 다음 마을까지의 150km 거리만을 생각하며 걸어야 했다. 그래야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만나는 하이커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 무슨 생각을 하니? 너를 계속 걷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와? 이 길을 왜 걷기 시작했고.. 피씨티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어?


하이커들은 많은 조언과 위로를 해주었다.


우선 다음 마을까지만 가봐. 마을에 도착하면 편안한 숙소를 찾고, 몸을 깨끗이 씻어. 그리고 세상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피로 때문에 금방 노곤해질 거야. 금방 잠이 들 수도 있겠지. 자고 일어나면 노을이 질 때쯤 밖으로 나와봐. 선선한 바람이 불거야! 그리곤 맛있는 걸 먹으러 가. 하이커들을 만나서 맥주도 한잔 해. 그렇게 하루 이틀 쉬다 보면 다시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거야. 그렇게 하나하나 보고 가면 돼. 한 번에 캐나다에 도착하려 하면 힘드니까.


이 말은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주었다. 신기하게도 마을에 도착해 깨끗이 씻고 편안한 상태로 쉬다 보니 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마을에서 만난 여러 하이커들과 수다를 떨고, 그늘진 곳 아무데서나 누워 바람과 공기와 자연의 냄새를 맡을 때면 고생했던 기억이 사라졌다.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걷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더욱더 중요했던 건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하는 목표에 대한 집착, 다른 마을까지 며칠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집착, 이런 집착들로는 나를 트레일 안에서 자유치 못하게 했다. 집착이 눈을 가려 즐기는 것을 막았고, 존재하는 것을 방해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정해놓은 목표에 집착 하기보다 '온전히' 그 공간과 시간 안에 존재할 것, 그리고 즐길 것. 이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을 집착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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