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빠지는 설산을 장시간 걷는 건 지치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그에 따른 체력 소모도 장난이 아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길은 쓰레기로 뒤덮인 것 같았다. 마치 군인들이 눈을 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라고 하듯, 내 눈 앞에도 하늘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볼 때야 그저 아름답고 저 공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겠지만 그날의 기록을 찾아보니 역시나 욕으로 가득 차있다. 끝나지 않는 눈과의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제발 맨바닥을 밟으며 걷고 싶다. 미끄러지지 않고 싶다. 똑바로만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발이 그만 젖었으면 좋겠다. 엉덩방아도 그만 찧었으면 좋겠다. 엉덩이가 그만 젖고 싶다. 지겹다. 지겹다. 지겹다!!!! 눈이 너무 지겹다. 대강 이런 내용에 육두문자가 섞여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의 효용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물이 없을 때 눈을 녹여서 먹을 수 있으니(실제로 그렇게 마시기도 함) 사막에서와 달리 5리터의 물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또 눈으로 덮인 내리막이 펼쳐진 길에선 매트를 썰매삼아 한번에 빠르게 내려갈 수도 있다. 그래서 엉덩이가 다 젖는 것...
무튼 하루 이틀 설산을 걷는 거야 새하얀 겨울왕국을 잠시 즐기고 내려오면 끝이지만 이 길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주, 삼주, 한 달을 매일같이 설산을 걸어야 했다. 계속 눈 위를 걸으니 신발이 마를 틈이 없었다. 그나마 저녁에 모닥불을 피우고 말리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한 눈을 팔다가 신발 끈을 다 태워버렸다. 끈 없이 너덜너덜한 신발로 설산에서 하이킹을 한다는 건, 할많하않.
높은 고지를 계속 걷다 보면 Gps가 터지지 않는 구간이 나온다. 나와 승규의 핸드폰에서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피씨티의 길이 모두 눈으로 덮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Gps가 되질 않으니 앱도 볼 수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사람의 발자국을 찾아 걷기 시작했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겠나. 금세 길을 잃고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길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사람의 발자국이라 생각하고 따라간 길은 우리를 더욱 음습한 곳으로 이끌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 하이커가 길을 잃고 실종되거나, 사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주저앉았다. 눈으로 덮인 길과 먹통이 돼버린 Gps에 화가 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소리를 질렀다.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텐트와 침낭, 며칠간 버틸 수 있는 먹을거리가 있어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미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멘탈은 붕괴된지 오래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산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눈 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 하늘을 봤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힘만 빠졌다. 예민한 상태에서 서로를 건드려봐야 어떤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누워서 그렇게 하늘만 바라봤다.
조금 쉼을 가진 후 다시 길을 찾기 시작했다. Gps가 터지길 바라면서 움직였다. 어느 순간 신호가 잡혔고, 우리가 위치해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살았다!!!! 우리는 트레일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다시 복귀 하려면 절벽 같은 곳을 기어올라야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단단히 박혀있는 돌을 손으로 잡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흙무더기들이 와르르 밑으로 쏟아졌다. 없던 길을 만들어내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산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드디어 절벽을 올라 트레일로 보이는 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 Gps는 터지지 않았지만 이 길이 트레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는 Kearsarge pass라 불리는 고개였다. 2시간은 더 걸어야 했다.
드디어 Kearsarge pass를 찾았다. 이제 하산하기만 하면 마을로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마을이라니. 문명세계가 너무나 그리웠다. 패스를 넘을 때 우리를 이렇게 개고생 시킨 패스에게 엿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지만, 당시에는 정말이지.... 얼마나 고생했으면 산에게 엿을 먹이겠나.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해주시길.
잊을 수 없는 Kearsarge pass Forester pass
설산을 걷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북캘리포니아를 걸을 때였는데, Gps가 잘 터지더라도 워낙 길이 유실된 곳이 많다 보니 길을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었다. 앱에 나와있는 화살표만 보고 찾아야 하는데 그 화살표가 가시덤불을 가리키고 있으면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온다. 이 거대한 덤불을 뚫고 앞으로 가라는 소린데, 오망불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덤불 속으로 들어간다. 덤불 속에 있는 나무들은 탄력이 세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밀면 그대로 밀리지 않고 되려 나를 다시 뒤로 밀거나, 회초리처럼 찰싹 때리기도 한다. 파릇파릇한 잔가지와 가시들은 그들을 뚫고 들어가려 하는 내 팔과 다리에 흔적을 남긴다. 덤불을 뚫고 나오니 온 몸에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그날도 여전히 지독한 눈과의 사투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쳐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에너지바를 먹고 있는데 반대편 산에서 주황색 해먹이 보였다. 그 옆에는 캠핑을 하러 온 듯한 사람들이 눈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Hello~~~~~~~~~~~. 소리 지르는 나를 발견한 듯 그들에게서도 답이 돌아왔다. Hello~~~~~~~~~~~.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다시 Hi~~~~~~ 를 외치면 그들도 다시 Hi~~~~~~ 를 외쳐주었다.
저들을 만날 거란 기대도 없이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고, Gps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있던 곳의 반대편인, 주황색 해먹이 걸려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아시안 가족이 캠핑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아주머니는 내게 영어로, '저기 반대편에서 인사한 사람들이 너희가 맞니?'라고 물었고 우리는 그렇다고 했다. 이것저것 대화한 후에 아주머니는 So.. what is your nationality then?라고 물었다. 나는 We came from S.Korea!라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헉! 그럼 한국말할 줄 알아요? 라며 한국말로 물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한국분들이시구나. 우와 엄청 신기하네요!!!
그분들은 교포셨고, 가족끼리 Day hiking을 오셨다고 했다. 이런 첩첩산중에서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를 만나다니! 아주머니의 눈빛과 우리들의 눈빛 사이에서 뭔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그분들은 우리를 초대해 그리웠던 한국 음식인 김밥과 알타리 김치, 미소국, 멸치, 고추 등을 내어주셨다. 몇 주째 느끼한 미국 음식만 먹다가 맛보는 한식은 그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리는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걸어왔고, 캐나다 국경까지 걸어가는 피씨티를 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드렸다. 가족 중에는 난생처음 하이킹이란 걸 해보셨던 누님도 계셨는데, 첫 하이킹에 이런 대단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며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신발끈이 묶여있지 않은 내 신발을 보시더니 신발이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나는 며칠 전에 불을 피우고 신발을 말리다가 끈을 태워먹었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짐을 뒤적거리시더니 내게 분홍색 끈을 주시며 이거라도 괜찮으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사용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분홍색이든 연두색이든 무슨 상관이랴, 감사하다고 하고 넙죽 받았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별별 경험을 다 겪는데, 이렇게 전혀 기대치 않은 곳에서 같은 한인을 만날 때면 온 몸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른다. 지금까지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분명 이들 가족에게도, 우리에게도 뜻깊은 만남이었으리라.
피씨티를 걸은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하프 포인트에 도착했다. 무려 2150km를 지나왔다. 3개월을 걷는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처음 입었을 때 짙은 남색이던 티셔츠는 회색을 넘어 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교포 가족분들이 주신 분홍 신발끈과 때가 가득 묻은 얼굴, 팔과 다리, 7개나 빠져버린 발톱. 그 외 너덜너덜해진 가방과 냄새나는 침낭과 텐트. 산에서 먹었고, 산에서 잠을 잤다. 지난 3개월은 자연 그 자체였다. 가진건 아무것도 없고, 누가 보면 거지라고 보기 딱 좋을 상이었지만 길을 걷는 내내 정신만은 또렷했다. 또렷한 정신. 명료한 정신. 걸을 때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걷는 것에 집중했다. 먹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쉴 때도, 호숫가에 들어가 수영을 할 때도 복잡한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있는 것'에 집중을 했다. 그렇게 집중을 하다 보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한다.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필명도 조르바로 지었다. 현실을 맞닥뜨리고선 조르바처럼 사는 것이 어떤 삶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조르바는 말한다.
행복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곤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저번 글에서 적은 바 있지만 이 길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이와 비슷했다. 밤 한 알 대신 말린 살구, 허름한 화덕 대신 날 것의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모닥불, 바닷소리 대신 잔잔한 호수의 물결, 새의 지저귐, 고요히 들려오는 숲의 소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에게 말을 걸 때, 그 공간은 빛이 났다. 어떤 행위나, 물건을 소유했을 때 오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었다. 화가 날 땐 욕을 하고, 힘들 땐 엉엉 울고, 기뻐할 땐 온몸의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것,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런 것이 이 길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었고,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내가 3개월이란 시간을 걷는 것에 바치는 동안 친구들은 돈을 벌었고, 좋은 옷을 입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하프 포인트에 도착했다며 누더기 옷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내줬다. 친구들은 이런 개고생을 일부러 하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르바가 누군지 관심도 없었다. 빨리 와서 돈이나 벌라고 했다.
3개월간 내가 얻은 건 이런 것이 전부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는 추상적인 어떤 가치. 조르바만큼의 자유는 아니었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따라 해보려 했던 자가 배울 수 있었던 자유. 온전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물음. 보여지는 것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정신만은 결코 초라할 수 없었다. 하프 포인트에 도착하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지금껏 해왔던 고생을 다시 한번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웃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와준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 일었다. 몸과 마음도 어느덧 완벽히 적응했기에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Half point 멍든 발톱
하프 포인트를 지나 오레곤에 들어왔다. 오레곤은 지난 캘리포니아의 사막과 시에라 산맥에 비해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다. 많은 하이커들이 오레곤에서 스피드를 내 하루에 60~70km를 걷기도 한다. 우리 또한 스피드를 내기로 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는데 오레곤 곳곳에서 산 불이 크게 났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걸었지만 앞 뒤로 트레일이 모두 막혀버렸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뿌연 재가 텐트에 가득 싸여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공간이 노란 선글라스를 끼고 본 것 마냥 노랬다. 자칫 잘못하다간 불길 사이에 끼어 위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 마을로 재빠르게 내려온 후 다른 마을로의 탈출을 계획했다.
조금 더 큰 마을로 가면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을로 내려왔을 땐 이미 수십 명의 하이커들이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나 버스가 없어 히치하이킹을 해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니 쉽지가 않았다. 시에라 산맥을 걸을 때처럼 루트를 다시 정해야하기도 했다. 몇몇 하이커들은 오레곤을 패스하고 워싱턴을 걸으러 갔다. 우리는 오레곤 대신 해변가에 나있는 오레곤 코스트 트레일(Oregon coast trail, Oct)을 걷기로 정했다. 피씨티의 오레곤 트레일의 거리가 오레곤 코스트 트레일과 비슷한 650km 정도였으니 대신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틀간 히치하이킹을 열심히 한 덕분에 우리는 오씨티의 출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씨티가 산과의 사투였다면 오씨티는 바다와의 사투였다. 바다를 걷는 일이 산을 걷는 것보다야 수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걷는다는 것에 있어선 변함없이 지루하긴 했다. 생각할 거리들이 없을 때면 고기 생각이 났다.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갈매기살은 얼마나 맛있을까(아재개그주의). 미국의 짭짤하고 느끼한 머쉬 포테이토나 또띠아의 참치는 이제 그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판에 삼겹살을 치이익- 마늘과 김치도 옆에 놓고 치이익- 구워, 쌈장과 함께 상추에 싸서 한 입에 집어넣으면 그야말로 천국의 맛,, 이런 생각을 주로 하며 걸었다. 매일 보는 바다의 풍경은 질리지도 않고 매일이 새로웠다. 텐트와 침낭이 자주 눅눅해지긴 했어도 새빨간 석양과 짙은 안개, 바닷바람, 바다 냄새, 소리, 공기 모든 것이 그간 산에서 고생한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캐나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힘을 내서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