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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Pct 158일 차, 4300km 종료


 드디어 피씨티의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에 들어왔다. 512 mile, 약 820km만 더 걸으면 된다. 길고 길었던 대장정이 끝날 기미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피씨티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헬싱턴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아름다우나 난이도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다 비슷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앱에 나와있는 경사도를 봤는데 마치 주식 차트에서 나온 장대양봉 마냥 빨간 오르막이 치솟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게 보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야 했다.



대략 이런 느낌..

Guthook graph - https://www.halfwayanywhere.com/trails/pacific-crest-trail/app-review-guthooks-pct-guide/ 



다른 구간들에 비해 훨씬 수월했던 오레곤 해변을 걷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행을 다시 시작하니 죽을 맛이었다. 다시금 산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고, 피씨티에 적응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들다 보니 다리 근육이 튼튼해져 하루 종일 걸어도 무리가 오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시간에 보통 3~4킬로로 갔다면, 피씨티에서는 5~6킬로까지도 갈 정도로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워싱턴은 죽어라 고생한 만큼 황홀한 풍경을 자주 선물해주곤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고개를 힘겹게 오르는 순간 고개 밑에 보석처럼 펼쳐져있는 대자연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지만 보상을 받는 순간 그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만이 대자연의 공기와 맞닿았을 뿐이다. 






9월 중순이 되자 비와 눈이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재촉해야 했다. 조금만 늦어져도 캐나다의 국경이 눈으로 막혀버릴 수가 있다. 힘내서 걸었지만 눈과 비는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온몸을 적셨고 쉴 새 없이 걷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걸은 날 텐트 안에서 적었던 일기가 있다. 텐트 속의 눅눅함과 꼬질꼬질한 냄새가 만들어낸 감성적인 결과물이랄까. 오그라드는 표현이 많지만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사람이 그렇게 감성적이 되지 않을 수 없더라.


온몸이 젖은 날 텐트 안에서 썼던 일기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디선가 겨울왕국의 엘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추위는 점점 심해져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시때때로 비가 눈으로 바뀌었고, 눈은 비로 바뀌었다. 쫄딱 젖은 옷가지들을 말릴 새도 없이 많은 눈비가 내렸다. 캐나다에 도착하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니 마지막 시련을 겪는 듯했다. 아침도 어두웠고, 저녁도 어두웠다. 해가 가려진 날이 많아지니 걷는 내내 우울했다. 하루의 운행거리를 끝내면 바로 텐트를 설치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모닥불을 피울 수도 없었고 텐트 앞에 누워 친구들과 떠들 수도 없었다.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몸 관리를 잘해야 했다. 텐트 안에 들어가 축축한 옷을 입고 축축하게 젖은 밥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온몸이 가렵고 찝찝했다. 공기는 눅눅했다. 팔과 다리를 벅벅 긁으며 따듯한 샤워를 하는 상상을 할 때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 육체의 껍데기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 때면 금방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밤이 되면 물을 데워 날진에 넣고 침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발 끝으로 날진을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다 보면 따듯한 온기가 침낭 내부에 꽉 차올랐다. 젖은 몸과 옷을 말리는 최소한의 방법이었다. 밖에는 세찬 비가 텐트를 마구마구 두드렸다. 혹여나 캐나다 국경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매일 밤 생각했다. 눈비가 휘몰아치는 밤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되면 꽁꽁 얼어붙은 물방울들이 텐트 지퍼를 얼려놓았다. 쉽사리 문을 열고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얼어붙은 땅은 피칭해놓은 팩까지도 단단히 얼려놓았다. 텐트 안에선 다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꿉꿉한 침낭 속에서 상체만 빠끔 빼고 물을 데워 커피를 만든다. 진한 블랙커피다. 눈 오는 산자락에서 뜨거운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또 다른 낭만이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차가운 회색과 흰색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마음은 녹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또 하루를 뜨겁게 걸을 수 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캐나다의 국경을 하루 남겨놓은 마지막 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다. 트레일의 마지막을 앞두고 저녁을 먹는다. 그날도 역시나 비가 내렸다. 모닥불을 피우고 마지막 낭만을 즐기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하이커들끼리 각자의 텐트 안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기분이 어떨 것 같은지. 의외로 덤덤한 하이커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드디어 이뤄냈어, 정말 끝이야, 성공했어!라는 거창한 마음보단 시원섭섭한 마음이 컸다.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애증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일어난 새벽, 텐트 밖에서 구호 소리가 들린다. 다른 하이커들이 텐트를 정리하며 캐나다! 캐나다! 캐나다! 를 외치고 있다. 마지막 날이라니. 정말 끝이라니. 앞으로 8킬로만 더 내려가면 정말 끝이었다. 나도 텐트를 접으며 그들의 구호에 동참했다. 캐나다! 캐나다! 캐나다! 


8km를 걸어 비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하이커들이 비석 앞에 모여있다. 내가 들어오니 열렬한 박수를 쳐준다. 비석 앞으로 다가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쁜 마음도 잠시, 공허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토록 바라 왔던 마지막의 끝에 서있었지만,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도, 감격에 겨운 춤을 추지도, 목젖 끝에 묵직이 응어리진 먹먹함을 맘껏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 눈앞에 있는 비석을, 미국과 캐나다의 펄럭이는 국기를, Pct에서 마지막 풍경이 될 초록의 꽃잎들을.



Northern terminus of PCT



더 이상 갈 길이 없어져 버린 피씨티,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하, 드디어 끝이다'라는 후련함과,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아쉬운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트레일을 잠시 돌아보았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 트레일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흙내음 속에 깊게 섞인 땀방울과 북부 캘리포니아 어디쯤 숨죽여 흐느끼던 눈물이 지나온 길에 흩뿌려져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매일 목이 타들어갔고,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하기 위해 한 줌 그늘을 찾아 헤맸었다. 물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물이 말라있었고, 덕분에 말들이 마시는 물이나 벌레가 떠다니는 물을 마셔야 하기도 했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을 통과했다. 방울뱀과 전갈을 조심해야 했고 선인장 가시들이 손에 박히기도 했다. 발에 난 물집들은 끔찍했다. 첫 구간이던 사막 하이킹이 적응 되질 않으니 죽을 맛이었다. 피씨티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다. 매일 집에 가고 싶었다.


사막이 끝나 좋아했더니 기상 이변의 이례적인 폭설로 온통 눈 천지인 시에라 네바다의 산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산 장비들을 챙겨 앞에 놓여있는 '패스' 들을 하나하나 넘었다. 눈이 점점 녹으면서 불어난 얼음장 같은 강물들은 더 거칠어졌고 내 친구와, 다른 하이커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Gps가 잘 작동되지 않아 길을 잃기도 했다. 정신이 무너졌다. 그래도 길을 찾아 나아가야 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곰을 조심해야 했다. 발은 항상 젖어있었고 저녁이 되면 항상 불을 때어 신발과 양말을 말리고, 젖은 몸을 말렸다. 냉기가 땅에서 올라와 덜덜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북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쥐들의 습격을 받았다. 새벽 3시에 쥐들 세 마리가 텐트를 뚫고 들어와 내 얼굴 위에서 놀고, 내 음식을 먹어치웠다.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는 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매일 밤을 쥐들과 싸워야 했다. 텐트 곳곳엔 쥐가 파먹은 구멍이 흔적으로 남았다. 


오레곤 곳곳에서는 산불이 크게 낫고, 날리는 재들과 연기를 마시며 걸었다. 워싱턴은 매일매일을 높이 올라야 했고, 오른 만큼 다시 또 내려가야 했다. 거친 능선들을 따라 패스를 넘고 황홀한 자연환경을 마주할 때면 칼바람이 몸을 베고 지나갔다. 짙은 안개는 내 가방과 옷, 신발, 텐트, 모든 것을 천천히 적셨다. 급작스레 내리던 비는 눈으로 변했고 밤을 보내는 내내 텐트를 날려버릴 듯 휘몰아쳤다.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 주변은 밤새 내린 눈이 두텁게 쌓여있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눅눅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아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막을 걸을 때 원망했던 쨍쨍한 햇살을 볼 수 없으니 우울해져만 갔다.


우울해하던 시간 속에 어쩌다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세상을 반짝 비춰줄 때면,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나는 햇살이 그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추위를 덮어주는 햇살에 젖어버린 텐트와 침낭, 옷을 꺼내어 말렸다. 모든 게 축축이 젖어 덜덜 떨며 걷던 찰나에, 뜨거운 햇살을 내리 받으면 그건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축복이었고, 행복이었다. 마지막을 장식해준 워싱턴은 그만큼 힘들었지만, 경이로웠다. 형형 색깔의 네온사인과 높은 고층 빌딩들이 내뿜는 도시의 불빛들은 황홀한 대 자연의 자태와 바람 앞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시간들을 겪고 캐나다의 국경에 도착해 비석을 바라봤다. 그저 한없이, 그 비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다른 하이커들의 모습을 쓸고 지나온 바람은 내 얼굴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지나갔다. 모든 게 꿈같은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그 시간들이 언제 존재했었냐는 듯, 밴쿠버의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글을 쓰는 내게 묻는다.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모였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브라질, 대만, 홍콩,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각각 다른 대륙에서 모인 사람들이 'PCT'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냈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서로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같은 길이지만, 또 각자의 길인 그 길을 걸어냈다. 길을 걷는 내내 서로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점점 말라 가는 친구들을 보며 안쓰러운 듯 보다가도, 정신이 점점 강해져가고 있는 동료의 눈빛 속에 매료되어 내 정신 또한 강해져 갔다. 우리는 길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PCT 하이커라는 이름 아래 하나였다. 인생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이 길도 혼자서는 절대 완주할 수 없는 길이란 걸 깨달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고, 응원이 있었고, 격려가 있었다. 그 마음을 받아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Southern and Northern terminus of PCT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많은 문제와 고민들에 부딪힐 때마다 PCT에서 배운 수많은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올 것 같다. 모하비 사막에서 다 죽어가던 내게 한 하이커가 조언했듯, 힘든 일이 닥쳐올 때면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잘 것이다. 저녁노을이 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웃을 것이다. 어쩌면 한바탕 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후엔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인생이란 긴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 중 가장 값진 경험을 이 길에서 얻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이 길은 내게 귀한 스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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