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행은 오래 미뤄두었던 시간의 보상 같은 것이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남겨두었던 휴직을 사용했고, 아이는 여름방학을 맞았고, 남편은 장기근속 리프레쉬 휴가를 쓸 수 있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는 결혼 10주년이었다.
그 시간을 조금은 멋지게 남기고 싶었다.
사진으로, 기억으로, 그리고 “그때 참 잘 다녀왔다”라고 나중에 말할 수 있도록.
최종 목적지는 남프랑스였다.
그곳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알찬 여행을 위해 우리는 파리에 먼저 들렀다.
바쁜 일정이었고, 보고 싶은 것도, 가야 할 곳도 많았다.
여행의 초반부답게 욕심이 앞섰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길었던 코로나 이후 처음 떠난 유럽이었고, 파리는 생각보다 훨씬 붐볐다.
사람도 많았고, 하루의 동선 은 늘 빠듯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움직였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남편의 걸음에 맞추고, 다음 장소를 확인하며 하루를 버텼다.
몽마르트언덕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환승구간에 내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시야가 갑자기 좁아졌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바닥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그다음 기억은 끊어져 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마담(madame), 마담(madame)”
처음에는 꿈속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마담, 괜찮아요?, 마담, 눈을 떠요.”
낯선 언어, 낯선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나를 붙잡았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고, 사람들의 얼굴이 있었다. 지하철 직원과 지나가던 행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을 잡아주고 있었고, 누군가는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 사이로 아이의 울먹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부르며 울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 옆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남편이 서 있었다.
괜찮냐고, 정신이 드냐고 몇 번이고 확인하는 얼굴이었다.
그제야 내가 쓰러졌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태어나 처음으로 구급차를 탔다.
사이렌 소리가 파리의 거리를 가르면 울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버티지 않아도 되었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었다.
병원에서 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도보다 먼저 든 생각은 조금 창피하다는 마음이었다.
이 나이에, 이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날 파리에서 내 몸이 멈춘 건 약해져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왔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도 가끔 그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마담, 마담”
그건 나를 깨우는 말이 아니라 나를 살려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