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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Mar 27. 2023

나는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가평 독립서점 <무용>





첫째 아들에겐 반평생(!)을 넘도록 함께 한 친구가 있다.

2020년 가을, 친구는 가족들과 함께 일본 도쿄로 이민을 갔고, 몇 년을 지속된 코로나라는 녀석 때문에 그 이후로 한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3년 만에 하늘길이 자유로이 열린 후에야 친구와 그 가족들은 일본 봄방학 시즌인 3월에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들의 스케줄은 어느 내한한 해외 스타 못지않게 빡빡했고, 우리 가족은 그들과 조우할 차례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나는 첫째 친구만 스리슬쩍 주말에 빼 오기로 했고, 신랑은 그 어렵다는 자라섬 오토 캠핑장에 취소된 한자리를 극적으로 발견해 예약한다. 우리 부부는 얼결에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노력하는 부모가 되었다. 그런데 난관에 봉착했다. 때는 3월이었기에 쾌적한 캠핑을 영위하기 위해선 난로를 꼭 실어야 했으나, 다섯 명(우리 가족+친구)이 다 타려면 난로를 실을 공간이 없었다. 고민 끝에 난로를 빼고, 더 추워지기 전 밤에 돌아오는 무박 캠크닉을 하기로 했다. 이너텐트와 난로를 빼니 차 위에 루프백을 얹지 않아도 되었고, 캠핑장 근처 가평 읍내에 없는 것이 없어서 집에서 따로 음식을 준비해가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놀게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해서 텐트를 치고, 간식으로 먹을 토스트와 저녁으로 먹을 약간의 고기를 샀다. 장을 본 후에 신랑과 아이들은 캠핑장으로 돌아가고 나는 읍내에 홀로 남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습관처럼 근처에 독립서점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게 되는데, 가평 읍내에도 작년 여름쯤 새로 생긴 독립서점이 있었기에 잠시 들렀다 가기 위함이었다. 독립서점을 여행하다 보면 공통으로 느껴지는 어떤 결이 있다. 가평 읍내 장터 뒷골목에 자리 잡은 서점 <무용> 또한 그러했다. 당연한 거겠지만 서점의 분위기와 대표님의 분위기가 참 닮아있다. 따뜻하고 수줍지만 확고하고 강단 있는 느낌이랄까? <무용>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한 장면이었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김희성(배우 변요한)이 했던 대사.

“나는 이리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봄, 꽃, 달….”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에게선 그런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어떤 공통된 결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곳을 운영하는 시인과 디자이너 두 분도 그런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시인과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서점답게 한쪽은 시집으로 가득했고 또 한쪽은 미술 서적과 디자인 용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표님께 소장 가치가 있는 괜찮은 책들을 추천 부탁드렸고 추천해주신 몇몇 작가님들 중 황수영 작가님과 박연준 작가님 책을 구입했다. 조금 머무르다 가고 싶다고 하니 창가 쪽 명당자리 책상 위 소품들을 살짝 치워주셨고, 나는 그곳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구입한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 서점만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더 느껴보고 고이 간직한 채 돌아가고 싶었다. (아이들이 있는 캠핑장으로 돌아갈 시간을 최대한으로 늦춰보려고 한 건 단연코 아니다)

창가에서 바라본 건너편 초록색 대문집은 참으로 근사했다.

빨강도 노랑도 아닌 초록색 대문이라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서점 뷰로 손색이 없었다.

커피를 함께 팔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커피의 존재 여부를 궁금해하는 내게 “커피 판매를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카페도 있어서 계속 고민만 하고 있어요.”라고 수줍게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이야기가 참 진솔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또 가평 캠핑장에 오게 되면 2% 적립도 하고 시집에 사인도 받아오겠다 다짐하며, 잠깐의 서점 여행을 마치고 둘째가 주문한 맘스터치 감자튀김 대자를 사 들고 캠핑장으로 돌아간다. 가평 주민분들뿐만 아니라 나처럼 캠핑장을 찾은 분들도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을 공간, 여행지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 서점 <무용>에서 나는 여행 속 여행을 했다. 지금은 쉽게 하기 힘든 혼자만의 여행이지만, 이렇게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행복이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몇 년 만에 성사된 절친과 함께하는 여행에 첫째와 친구는 그저 행복하다. 둘째는 형아들 틈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분주히 준비한다. 고기와 소시지를 굽고 자연스레 맥주캔을 딴다. 수술 후 처음 마시는 맥주. 술은 못 끊어도 맥주는 끊겠다고 다짐했건만…. 캠핑장에서 한 캔쯤은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는 합리화를 해본다.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며 <무용>에서 구입한 책을 마저 읽어보려고 책장을 펼친다.


완벽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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