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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수고로운 한 끼

by 권냥이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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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다.

삼시세끼를 매일 차려야 하고, 냉장고와 수납장에 간식거리가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방학.

비록 카레, 짜장,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주먹밥의 무한 돌려막기 일지라도 아이들 식사는 할 수 있는 한 직접 요리한 음식을 해 먹이려고 한다.

아이들을 챙기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내 식사는 대충 때우게 된다. 뭘 먹을지 생각하고 요리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진다. 밥상에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나를 위한 요리가 준비되어 나왔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아이들이 먹다 남은 밥, 스트레스 해소용 맵고 자극적인 음식, 다 귀찮을 땐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만다.

그 음식이 어떤 종류일지라도 내가 만든 음식보다는 맛있다. (이건 내가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원래 남이 해준 게 더 맛있어서 그렇다)


<고독한 미식가><심야식당> 등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작품 외에도 음식을 소재로 한 일본 작품들은 많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461개의 도시락>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뮤지션인 아빠 카즈키가 고등학생 아들 코우키를 위해서 매일 매일 도시락을 싸주는 잔잔하고 따뜻한 가족영화로, 매일 매일 바뀌는 다양한 일본식 도시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다.

아기자기한 요리에 영 소질이 없는 나는 아이들 소풍이나 체험학습 때 한두 번 싸주는 도시락도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라, 아들의 도시락을 위해 식재료를 구입하고 새벽같이 기상해 도시락을 정성 들여 싸고, 아들의 텅 빈 도시락을 보며 흐뭇해하는 주인공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엔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요리와 음식 관련 작품 감상하는 것이 힐링도 되고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그런 쪽의 영화나 드라마만 보게 되었다. 먹방 유튜버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대리만족감이 느껴져서라는데, 나 또한 못 먹는 음식을 눈으로라도 보는 것을 좋아했나보다. 라멘이나 스시, 미소된장, 낫또 등 예상 가능한 (먹어본) 음식들 외에 처음 보거나 낯선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볼 때면 저 맛이 대체 뭘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궁금한 음식을 먹어보러 당장 일본으로 날아갈 여건은 안 되니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전에도 일식이 가끔 당길 때 모츠나베(대창전골)나 오코노미야키는 집에서 만들어보곤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손님맞이 술안주로 만든 음식들이었고, 영화에서처럼 온전히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에는 청경채와 각종 버섯, 어묵 피시볼과 차돌박이를 가득 넣은 일본식 전골 스키야키를 만들어 보았고, 생맥주가 생각나는 무더운 날에는 튀긴 닭가슴살에 삶은 계란과 마요네즈, 피클, 레몬즙 등을 섞은 소스를 얹은 치킨 난반을 술안주로 만들었다. 마트에서 신선한 연어가 눈에 띄는 날에는 생연어에 소스를 얹은 사케동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면이 당기는 날에는 삶은 계란과 숙주나물, 삼겹살을 구워 올린 미소 라멘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요리 하나 만들 때는 30분에서 1시간가량의 시간을 할애한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그릇으로 보기 좋게 옮겨 담는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미리 냉동실에 얼려둔 맥주잔이다.

아끼는 그릇에 담은 요리와 미리 냉동실에 얼려둔 꽁꽁 얼린 얼음 맥주잔을 식탁에 세팅하고 캔맥주를 시원하게 잔에 따라내면 주방 식탁은 나만의 이자카야가 된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주인공 고로 상은 늘 혼자 식사를 하더라도 음식을 먹기 전에 손바닥을 마주하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혼잣말을 한다. 요리를 만들어준 이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을 표하는 의식이기도 하겠지만, 내 앞에 놓인 음식 그 자체에 대해 정중히 예의를 갖추는 모습 같았다. 진심을 다해서 음미하고 감사히 먹겠다는 인사.

나 또한 예의를 갖춰 내가 만든 요리를 마주한다.

정성껏 만든 음식이기에 허투루 먹을 수 없다. 한 입 한 입 입에 머금으며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한다.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든 음식은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의식과도 같았다. 나를 위한 음식이니 양도 넘치지 않고, 양이 넘치지 않으니 남김없이 싹싹 먹게 된다.

내가 만들었지만, 꽤 먹을만하다.

나를 위한 한 끼는 수고로울지언정 그 어떤 한 끼보다 가치 있다.



뭐,

그래도 가장 맛있는 건

역시 남이 해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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