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과 파란약, 무엇을 삼킬까
나를 제외한 타인과 타인이 모인 사회, 국가는 자주 불안정하다.
예를 들면 지금 함께하는 연인은 언제든 나에게 이별을 통보할 수 있다. 회사는 개인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결정할 수 있다. 국가는 전쟁 같은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애국심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한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안주하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된 희망만을 좇는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불편한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성에게 고백했지만 수차례 거절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릴 땐 사랑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정적인 현실의 도피처는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 속 이상적인 여성 캐릭터들. 예쁘고, 성격도 좋고, 언제나 주인공을 이해하는 존재들. 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현실이 아니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다. 20분의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만약 내가 애니 속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매일 여러 여성들과 함께하고, 고백의 실패나 관계의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안심의 애니는 행복하다.
북한은 매년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적대적 대치 국가와의 긴장 상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국민들은 무덤덤하다. 전쟁이 날 것이라며 식량과 방독면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또 저러네. 이번엔 쌀이 부족한가 보군"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릴 적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를 보고 엄마에게 전쟁이 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엄마는 "저건 단순한 협박이야. 피난 갈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한의 도발을 보며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김정은이 굳이 남침을 감행할 이유가 있을까? 왕처럼 편하게 살고 있는데 전쟁을 일으켜 모든 걸 잃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전쟁은 명분이 있어야 하며, 명분 없는 전쟁에서 북한도 손해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위협을 하는 만큼 더 강한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기에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내가 이렇게 주말에 노트북을 두드릴 수 있는 것도 군대가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전 상태인 나라에서 전쟁의 위험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
인간은 언제든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속마음을 감출 수도 있다. 그렇기에 타인을 100%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아군처럼 행동하다가도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뉴스만 봐도 그렇다. 동업자가 거액의 공금을 들고 도망가거나, 사랑을 맹세했던 배우자가 보험금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비일비재. 세상은 요지경이니까.
사회가 변할수록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족조차도 믿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현실에서 1인 가구로 사는 것이 속 편한 삶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공간에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자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나가고, 퇴근하면 사람이 만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감상한다.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10년 동안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면 100억을 주겠다"라고 제안한다면 거절할 것이다. 물론 100억은 평범한 돈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과의 교류 없이 10년 동안 살아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새, 뱀, 거북이와는 인간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까. 답답함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혼자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이성과 함께 살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어렵겠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타인을 불편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위안을 얻는 모순적인 존재다.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네버랜드의 피터팬처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나도 25살까지는 피터팬으로 살고 싶었다. 사회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돈 많이 벌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나에게 숨 막히는 조건이었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벅찼다. 사람들은 나의 노력과 과정에는 관심이 없고, 결과만을 보고 평가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남들의 화려한 삶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30살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인생은 기쁨과 행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아픔도 함께한다. 시대가 급변할수록 사람들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파격적이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이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사회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 개인에게 더 이롭다. 안심시키는 거짓에 속지 않고,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불편한 진실이 있지만, 외면하지 않고, 금기시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마주 보는 초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