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강요당하는 시대에서
지하철에서 졸다가 문이 열릴 때마다
‘회사 불탔다’는 문자가 오길 바랐던 날이 있다.
퇴사는 못하겠고, 출근은 더 못하겠을 때,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희망을 이루는 게 아니라,
현실과 협상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구나.
나는 늘 성실한 편이었다.
정해진 일은 잘 해냈고,
야근도 별말 없이 하고,
눈치도 적당히 보면서 잘 버텼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피로가 쌓였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마음이 축축 쳐지는 기분.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구나’ 싶었다.
회사 화장실 3층 맨 끝 칸.
그날은 정말 버티기 힘들어서
문을 잠그고 그냥 앉아 있었다.
누가 문을 두드리면
“배탈났어요”라고 둘러댈 각오까지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칸 안에서 20분 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변도 안 나왔고, 눈물도 안 났다.
그냥… 무너진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다 힘들어.”
“그 정도는 다 참으면서 살아.”
맞는 말이다.
다들 힘들고, 다들 버틴다.
그래서일까.
이 시대는 ‘도움’보다 ‘버팀’을 칭찬한다.
쉬고 싶다고 말하면 게으르다 하고,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하다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는 척, 괜찮은 척을 배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은 척'이 점점 능숙해지는 것이다.
가끔은 상상한다.
누군가가 물어봐 주길.
“괜찮아?”
“요즘 너 힘들어 보여.”
그 한마디가 너무 듣고 싶은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다들 바쁘고, 다들 피곤하고,
누구도 누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강함보다,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았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