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너무 쉽게 말을 얹는다
며칠 전, 정말 마음이 무너진 날이었다.
별말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요즘 좀 많이 힘들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돌아온 말은
“그건 네가 잘못한 거잖아.”
그 순간,
어깨에 올려둔 마음이
조용히 미끄러져 내렸다.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더 깊이 무너졌다.
요즘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면
위로보다 정리가 먼저 돌아온다.
공감보단 조언,
이해보단 해석.
그리고 그 모든 반응엔
‘너를 돕겠다’가 아니라
‘너를 판단하겠다’는 냉기가 묻어 있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너도 잘못했잖아.”
라는 말을 건네는 건,
피 흘리는 상처에 손가락질하는 일이다.
예전에 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한참을 듣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약한 척만 해?”
그 말 이후,
나는 그 친구 앞에서 더 이상 진심을 꺼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모든 감정에
‘이 말도 누군가에겐 짜증으로 들릴 거야’
라는 전제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아프다.
어떤 이에게 사소한 일도,
나에겐 세상을 뒤흔드는 충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그 다름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왜 그래?’
‘다들 그 정도는 참고 살아.’
그 말들 속에
공감은 없고,
순위만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입을 닫는다.
“괜히 말했다.”
“오히려 내가 유난스러워 보였나?”
그 불안이
진심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는다.
공감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다.
분석도, 조언도, 논리도 필요 없다.
그저 가만히 듣고,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 말 한마디면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지금,
그 한마디를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누군가의 진심 앞에서
말을 얹기보다 먼저 평가하는 시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누군가의 고백 앞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