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렸어
디오니소스에서의 우연한 재회 이후,
우리는 다시 어색하게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잘 잤어?’
‘오늘도 야근이야?’
‘우리집 고양이, 오늘따라 엄청 예민해’
사적인 대화가 늘어났고,
대답에 웃음 이모티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의 문이 다시 열렸다.
—
그날은 비가 왔다.
신림 뒷골목 카페,
은정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여기, 자리가 좋더라.”
그녀가 앉은 창가 자리에 나도 함께 앉았다.
우리는 오래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말하지 않은 것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준식은 먼저 말을 꺼냈다.
“은정아.”
“응?”
“…나도,
예전에 누굴 사랑했었어.”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은 건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냥, 너도 그랬을 것 같았어.”
“미련은 없어.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 떠나고 나서
다시는 누굴 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은정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 사람은,
나한테 늘 '너무 조심스럽다'고 했거든.
그러면서 ‘나랑 있으면 불편하다’고.”
“그리고,
내가 무표정하고,
감정 표현도 없고,
늘 상대방 기분부터 살핀다고.”
“…그래서 결국엔,
날 떠났어.”
은정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 사람 참… 나빴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다 맞긴 해.”
준식은 웃었다.
그 웃음은 씁쓸했지만,
어딘가 홀가분했다.
“그래서 너랑 있을 때도
어떻게 감정을 꺼내야 할지 몰랐어.
좋아한다는 말도,
질투 난다는 말도
속으로 삼키기만 했지.”
“그래서 노트 봤을 때,
확 무너졌어.
너무 겁났거든.
또, 내가 부족해서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은정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런 생각…
혼자 하지 마.”
“응.”
“나, 너한테 상처 준 거 알지만…
우리,
서로 천천히 알아가면 안 될까?”
준식은 손을 꼭 쥐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