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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Jan 12. 2021

아기 이름이 뭐가 좋을까요?

  내 취미생활은 게임이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친구들이랑 게임을 한다 하면 엄마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좋은 것을. 밖에 나다니면서 연락이 안 될 일 없고, 낚싯대며 골프채며 이것저것 산다고 큰돈 쓸 일도 없다. 내겐 편한 시간 언제든 패드 하나 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할 수 있는 이만한 취미도 없는 듯하다.


  이런저런 게임을 하다 보면 매번 어김없이 막히는 구간이 있다. 바로 캐릭터 이름이나 닉네임을 정할 때이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나 혼자 과몰입한 걸 수도 있지만 게임하는 동안 꾸준히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이기도 하는 이름 정하기가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심한 성격 탓인 건지.


  게임 캐릭터 이름 정하기도 이렇게 어려워하는 나에게 평생 안고 갈 진짜 이름 정하기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요즘 곧 태어날 아기 이름이 뭐가 좋을지 생각이 많다. 




  집 앞에 작은 호수공원을 가로질러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쩌면 집을 나서는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을 걷고 있던 커플들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은 아기의 이름을 정하고 있었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었다. 최근 관심이 많았던 아이의 이름에 관한 대화가 얼핏 들리기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됐었다.  지금 여자분의 뱃속에 아기가 있는지, 아니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 이름을 생각하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앞에 커플은 아기 이름으로 '시후'란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땐 시후로 들렸는데, 어쩌면 '시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제 와서 든다.

  시후. 시우. 

  아들에게 건, 딸에게 건 잘 어울리기도 하고 어쨌든 예쁜 이름인 듯하다.


  우리 아기 이름은 뭐가 좋을까? 

  지금은 가족 모두가 태명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젠 슬슬 이름도 생각을 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아직까진 아내나 나나 딱히 염두에 두고 있는 이름은 없다. 그래서 어렵다. 세상 이름이 한두 개도 아니고 선택권이 너무 많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벙 쪄버린 기분이다.

  일단 아내는 영어 발음이 쉬운 글자가 하나는 이름에 들어갔으면 좋겠단다. 진이나 준, 린 같은 글자들 말이다.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를 영어 이름을 위해서란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지만, 조금 앞서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가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 같기도 하다. 요즘은 아이들 영어 학원에서도 영어 이름 하나쯤은 쓴다니 말이다.

  철학원에도 가능하면 한 번 가볼 참이다. 기분이라지만 그래도 사주팔자라는 게 그저 무시하고 넘어가기는 힘들지 않은가. 어찌 됐든 좋아서 나쁠 것도 없으니 글자의 획수니, 물, 불, 나무, 금 이런 것들도 알맞게 맞출 수 있으면 맞추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영어 이름이 어울리는 이름을 원한다면서 또 사주팔자, 음양오행을 보러 철학원에 가본다는 게 아이러니 하긴 하다. 그만큼 이름이란 게 어려운 거라고 웃어넘긴다.



  내가 태어나고 내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오셨다. 지어온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볼멘소리를 했다고 했다. 아들 이름이 싫은들 어쩌겠는가. 시아버지가 지어온 이름이라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부르며 나를 키우셨댔다.

  아내는 결혼 전 개명을 했다. 난 아내의 그 전 이름이 좋았다. 근데 전에 쓰던 이름보다 지금의 이름이 더 좋다 했다. 그래서 이름을 바꿨다. 얼마 전엔 옷가게에서 멤버십 등록을 하면서 이름을 말하는데 사장님께서 아내의 이름이 참 예쁘다고 했다. 바꾸길 잘했나 싶었다.

  아내나 나나 이름이 간단히 생각할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누구는 이름에 글자를 따다가 별명이 생겼고, 또 누구는 유명인이랑 이름이 똑같아 주목을 끌기도 한다. 모두가 자기 이름에 사연 하나쯤은 있다. 그래서 그 두 글자 짓기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조카가 이름을 바꿨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카에 전 이름은 예뻤다. 사촌동생도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이었을 텐데, 이름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오지랖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얘기가 맘에 걸렸던지 사촌동생은 이내 조카의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적당한 이름으로 부르다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너의 이름이니 이젠 네가 정해보렴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볼까? 

  뭐 상상뿐이지만 이리 무책임한 아빠가 있을까? 혼날게 뻔하니 아내에게 이 말은 안 해야겠다.


  이름, 이름, 이름. 또 하나의 긴 고민거리가 생겼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빠 되기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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