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의 그늘 아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기상 예보에 없던 말 그대로 소나기였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비를 피해 달려갔다. 오 분도 안 돼서 땅이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런데 내 시선을 머물게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나무 아래.
나무 주변은 다 비에 젖어 아스팔트 색이 전부 짙어졌는데, 나무 아래 땅만 멀쩡했다.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마치 그 모습이 반대로 진 그림자 같았다. 주변은 어수선한데, 나무 아래만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해 보였다. 비가 와도 피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게 바로 피난처 아닐까? 정말로 나를 안전하게 하는 전능자의 그늘 같은 곳 말이다.
반대로 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에게 피난처 같은 존재들을 생각해 봤다. 갑작스러운 비와 폭풍이 몰아쳐도 내가 의지할 만한 대상들.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들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과 정성으로 컸다는 사실 말고는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를 정성으로 빚어준 이는 하나님, 혹은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또는 선생님과 친구들. 이것이 나의 유일무이한 자존감과 자신감의 기원이다.
그 정성이 때로는 희생과 헌신의 이름으로 나를 짓누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때로는 마음이 무겁고 가끔은 버겁고 우울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기저에 있는 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그 사랑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금세 빚어진 정성의 모양으로 복구되곤 했다. 그 사랑과 정성으로 나는 자주 기뻐하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됐다. 때론 목 놓아 울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컸다.
나에게 그 큰 사랑과 정성을 준 당신께 이제는 내 사랑이 닿을 수 있도록 매사에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