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소리 May 31. 2021

(단편소설) 회색인들의 영토

2. '스무 살의 선우'는 몰랐던 그녀를 '나'가 만나다.

'스무 살의 선우'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스무 살 인생 최고의 굴욕을 맛보았다. 경주에서 1박 2일로 진행된 신입생 환영회는 교수님들도 참여해서 결코 빠질 수 없었다. 불안과 어색함이 폭발한 것은 조별 연극 공연에 '스무 살의 선우'가 ‘최 진사 댁 셋째 딸’의 ‘셋째 딸’ 역할을 ‘선택’ 받았을 때였다. 여자 선배들이 '스무 살의 선우'를 여장시키는 동안 초등학교 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 연극을 공연했는데 동네 친구들 속에서도 '스무 살의 선우'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갈 구멍이 바늘구멍보다도 작았다. J나 K 같은 녀석들은 이걸 자신을 드러낼 기회로 생각했을 테지만 '스무 살의 선우'에게는 이런 자리에 선다는 것은 대중 앞에서 발가벗겨져 처형을 받는 중세 이교도 여성의 참혹한 수치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수치심이 얼마나 컸던지 1991년의 명료한 기억 속에서도 나는 '스무 살의 선우'가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대뇌 속에서 기억의 한 조각마저도 전혀 끄집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셋째 딸 역할을 ‘선택했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교수님에게 애교를 떨며 안기기까지 했을 때는 폭소까지 선물로 받았다. 폭소가 멸시가 아닌 인정과 호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의 선우'가 차지하지 못했던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뻔뻔함은 타고난 거야, 아니면 학원에서 배운 거야?”

우리보다 두 살 많은 동기 누나, N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총여학생회에 가입함으로써 벌써 자신이 갈 길을 명확히 결정지은 누나.

“어, 누나. 이런 것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으면 소개해 줘.”

“뭐, 누나? 너 입학과 동시에 인생 졸업하고 싶지? 동기한테 누나라는 막말이나 하고.”

“돼지 띠면 누나인데 누나는 개 띠니까 누님인가?”

“참, 정말. 타고났구나, 타고났어!”

N은 내 등짝을 후려갈기고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 능청스러움은 타고난 게 아니야. 부끄럽게 살기 싫어 피나게 노력한 결과야.’

그랬다. 군대를 갔다 와서도 부끄럽게도 중심에 편입하지 못하고 늘 주변만 맴돌았다. 일 년을 휴학하고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에야 '스무 살의 선우'는 능청스러움을 친구로 둘 수 있었고 드디어 중심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앞으로 7년 후의 일이었다.

스물일곱에 터득한 능청스러움으로 나는 스무 살에 가입한 문학창작 동아리 ‘유월’의 신입생 환영회도 무사히 통과했다. 87년 6월 항쟁 후에 만들어졌다는 ‘유월’의 91년 신입생이 겨우 두 명인 것을 보고 동아리장 선배는 인생 다 산 노인네처럼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게 바로 문학의 위기다. 너네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년 6월이 오기 전에 우리는 문 닫는다.”

신입생에게 모든 부담을 지웠지만 동아리가 생긴 4년 동안 그 흔한 대학 문학상 하나 가져오지 못한 선배들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둘은 우리 대에서 대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조선조 유학자처럼 비장한 각오로 매일 동아리방을 들락거렸다. 우선 아침 청소와 저녁 청소가 우리 몫이었는데 번갈아 가면서 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시간이 덜 걸릴 것 같아 시은이와 나는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래, 그녀 이름은 박시은이었다. 어딘가 가냘프면서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을 들게 하는 박시은. ‘너, 배우 박보영을 꽤나 닮았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아차 싶었다. 91년의 박보영은 증평에서 분유를 먹고 있을 두 살짜리 아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양지바른 베란다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품이며 자그마한 체구 때문에 차마 그녀에게 밀대 걸레를 맡길 수 없었다. 

빗질을 하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너는 왜 유월에 들어왔어?”

“소설 쓰려구.”

“소설 쓰려구? 참 말 쉽게 한다. 소설이 그렇게 쉽게 써지는 줄 아니? 절박함이 없으면 한 줄도 못 쓰는 게 소설이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같은 신입생이면서, 심지어 나는 국문학과인데 사학과 신입생에게 소설론 강의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래 봬도 나는 8년 후에는 대학 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된 몸이란 말이야.

“그럼 너는 절박함이 있어? 그게 어떤 절박함인데?”

“........”

대답 대신 그녀는 이제 막 꽃잎을 터뜨리고 있는 창밖의 벚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옆모습만 보였지만 그녀의 눈에 슬픔이 맺히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소설) 회색인들의 영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