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통역해도 알 수 없는 전문 용어
해외 브랜드의 VMD(비주얼머천다이저)로 일을 하게 될 때,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 관련 업무 방식은 2가지다.
첫번 째, VMD가 영어(또는 해당 나라의 언어)를 잘해서 본사와 직접 화상회의나 전화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경우, 두번 째로 중간에 통역을 두는 경우가 있다. 내가 미국 라이센스 브랜드와 프랑스 라이센스 브랜드 업무를 한 적이 있는데, 두 번째 경우였다. '해외사업부'라는 명칭의 부서가 글로벌 본사와의 의사 소통에 필요한 '언어' 영역의 업무를 서포트했다.
예를 들면, 업무 관련 메일을 보내야 할 때, 내가 한글로 메일을 쓰면 해외사업부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보내준다. 물론 답이 오면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하여 내게도 보낸다. 모든 과정에 CC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연 2회 정도 글로벌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회사를 방문하고 매장 순회를 한다. 그들을 맞이하는 공항 픽업에서 부터 식사, 동선의 루트도 해외사업부에서 담당했다. 숙소는 글로벌 체인 호텔, 식사는 한국 느낌의 맛집으로 정하는 듯했다. VM업무 관련 회의에 참석을 할 때도 나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의사 전달하면 되고 통역과 기록은 그들의 업무였고, 역시 부서 이름에 맞게 세련되어 보이는 비즈니스 매너를 보였다. 몇 번을 하고 나니 이런 상황 또한 익숙해지고, 간단한 인사 정도는 부담되지 않았다.
글로벌 본사분들과 매장을 순회하는 스케줄도 있었다. 인테리어나 진열 원칙이 글로벌 기준에 맞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했고, 한국의 시장조사를 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연출) 수준이 매우 높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내가 봐도 최근의 우리나라의 유통과 브랜드 비주얼는 수준이 높은 편이고 볼거리가 많다. 함께 매장을 다니며 브랜드의 정체성, 꼭 지켜야 할 비주얼 기준과 연출, 세계적인 트렌드 등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친해 지기도 한다. 나 또한 평소 일 하면서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많이 질문하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해외사업부의 A대리는 센스있게 중간 역할을 잘 해주었다.
S백화점 본점을 방문했을 때였다.
매니저님이 매장 기둥 행거에 청바지를 Sleeve로 걸어 놓으셨다.
'한 피스 정도는 Face로 걸어 놓지, 뭐라 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글로벌 본사 VMD인 J가 "이 자리는 데님의 워싱 디자인을 보여 주는 스페이스인 만큼 2개 이상 꼭 Face out으로 디스플레이하라"고 했다. Face out으로 진열해야하는 이유와 '꼭' 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느낌이 강력하게 전해졌다. '이들도 우리랑 같은 단어 사용하네!' 라고 생각하는 나는 오히려 잘 알아들었는데, A대리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녀는 Face를 여러가지로 통역하느라 애를 먹었다. 사실 통역할 필요도 없다. Face out이 페이스 아웃이지. 최선을 다해 알려 주려는 A에게 다 알아 들었다고 말하며 오히려 내가 Face out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단어에 '얼굴'을 넣어 해석하면 안된다. 오죽하면 단어 그자체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글로벌 본사의 출장도 끝나고 우리는 서로 수고했다며 티타임을 가졌다.
* 참고로 어학 사전의 Face out과 현업에서의 Face out을 비교해 보았다.
1. 용감히[대담하게] 맞서다
2. 대담하게 밀고 나아가다
3. 끝까지 참고 견디다
(출처 ; 네이버)
“ 팀장님, 저 엊그제 S 백화점 갔을 때, ‘페이스아웃’ 때문에 진땀났어요.”
해외사업부 A대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 A대리, 그건 해석 자체가 안되는 그냥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예요. 뭘 그런 걸 신경써요…”
A대리의 고민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뭐든 통역해 주고 번역해 주는 업무만 하다보니, 본인이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더 보태도 안되고, 덜어내고 안되고 정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영어라는 것을 잘 하고 못하고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데, 본인 정도의 영어하는 사람들은 많고도 많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 연수를 다녀와서도 막히는게 많고 영어를 좀 하는 사람들은 영어 외에 뭔가 하나를 더 갖추어야 하는 강박이 있다고 했다. 영어 하나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면, 떠오르지가 않는다고… 그러면서 손으로 만지면 그냥 '쓰~윽' 연출이 되어 버리는 내가 부럽다고, 내 분야만큼은 누구 하나 입 댈 수 없게 만드는 모습이 정말 다르게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라는게 느껴졌다고…
사실 그 당시 나는 출산과 육아를 위해 3년 정도 경력 단절 후 이직하여, 4살 아들을 키우며 어린이집과 회사 업무, 외근, 출장 등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 내느라 거울 볼 시간이 없는 워킹맘의 모습이었다. 패션회사를 다니며 패셔니스타의 모습이라고는 1도 없던 그 시절, 글로벌 본사직원들이 저녁에 이태원이나 동대문 밤시장 구경가자해도 다 거절했었다. 육아와 업무로 늘 바빴고 시간에 허덕였다. 다음날, 함께한 직원들이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들 함께 보며 많이도 부러웠다. 무엇보다 영어로 농담까지 하며 얘기하는 건 더 부러웠다.
부서마다 다른 영역의 고민이 있구나. 업무를 하는 대리급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라 생각하며 소심하게 외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