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읽은 책 중에서 감명 깊었었던 책들 중 하나 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봤었는데,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 대전에 대해서 직접 기술한 책이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책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전쟁이 모두 끝난 뒤 시점에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후향적으로 시청자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이 발생하기 그 이전 세계의 정세에서부터, 전쟁의 과정, 전쟁 이후의 상황을 모두 겪은 사람이 1인칭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1인칭 시점에서 글을 썼다고 해서 본인의 생각만 써내려 갔던 것은 아니고, 세계대전과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인용을 하고 있어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대전 동안 했던 연설도 많이 인용되어 있고, 국가 간 조약이나, 당시 영국 왕인 조지 6세가 직접 처칠에게 썼던 편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서, 영국 외무부에서 일본 정부에게 보내는 편지 등도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장군들에 대한 일화 (롬멜 장군, 몽고메리 장군 등)들도 담겨있습니다.
처칠이 했던 아주 유명한 연설의 한 부분인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선전포고가 생각보다 아주 정중한 표현으로 통보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 도쿄 주재 영국대사는 일본제국 정부에 대하여 영국 정부의 이름으로 두 국가 사이에 전쟁상태가 존재하게 되었음을 통보할 것을 훈령했습니다.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경백 윈스턴 S. 처칠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간의 관계가 아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친밀감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1939년 9월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
... 귀하께서 다시 해군부로 돌아오게 된 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1차 세계 대전 때 귀하와 나는 비슷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일이 새로운 변수들 때문에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본질적인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귀하와 수상께 드릴 말씀은, 저에게 알려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개인적인 연락을 주시길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수병(Naval person)"이라고 서명하여 흔쾌하게 답신을 보냈다.
반면에 독일 대사와 하는 대화에서는 불도그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리벤도르프는 갑자기 지도 앞에서 물러났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경우라면,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총통께서는 결심하셨습니다. 아무도 총통을 막을 수 없으며,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의자로 돌아갔다. 나는 개인적인 한낱 국회의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약간의 영향력은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때 내가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데, 독일대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전쟁을 언급할 때, 그 전쟁이란 전면전을 말하는 것일 텐데, 결코 잉글랜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일단은 큰 목표가 제시되기만 하면, 영국 정부와 국민은 예상하지 못했던 온갖 형태의 행동을 개시하게 될 겁니다."
"영국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영국이란 나라는 아주 현명합니다. 만약 독일이 우리 영국을 또 다른 세계 대전에 몰아넣는다면, 영국은 지난 전쟁 때처럼 전 세계를 독일과 맞서도록 만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를 하는 과정에서 처칠이 해왔던 일 들이, 역사적 위인들의 내면에 있는 초인적인 힘 또는 이에 필적하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처칠 스스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런 과정에서 내렸던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로 항상 이어지지만은 않았던 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위인의 인간적인 면을 알 수 있지만, 반대로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이 위인이 되어가는 과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책이라 읽어보기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취향이 맞다면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